가지타 도쿄대 우주선연구소장 “정규직 위해 논문 쓰는 젊은 과학자들 불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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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日가지타 도쿄대 우주선연구소장

“일자리를 위해 해마다 논문을 몇 편씩 의무로 써야 하는 요즘 과학자는, 제가 연구하던 30년 전에 비하면 불행합니다. 하고 싶은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제가 노벨상을 받은 연구를 한 비결이거든요.”

지난달 29일 국제 공동 연구를 위해 방한한 물리학자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59·사진) 일본 도쿄대 우주선연구소장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정에서 만났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이면서도 가장 검출하기 어렵고 움직임까지 기묘해 ‘유령입자’라고 불리던 중성미자의 성질을 규명해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요즘 젊은 과학자의 처지에 대해 말할 때만큼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지타 교수는 30년 전의 연구 환경에 진한 향수를 드러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초짜 연구생’이었지만 기초과학 연구의 생명인 자유로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는 아무런 성공 가능성이 안 보여도, 단지 본인이 하고 싶다면 연구 주제로 자유롭게 선택해 집중할 수 있었다”면서 “지금 젊은 연구자들은 박사후연구원도 해야 하고 정규직 일자리도 구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게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현재의 척박한 일본 과학 현실에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2000년대 이후 일본의 놀라운 노벨상 수상 실적을 보고 한국에서 그 비결을 자주 묻지만 정작 현재 일본의 과학 연구 현실은 위태롭다”고 지적했다. “15년 전부터 시작된 정부의 기초연구비 삭감이 다음 세대의 과학 연구 성과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 그는 “온 사회가 고령사회에 대비하느라 기초 과학 연구에 중요한 대형 과학시설 구축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환갑을 앞둔 나이지만 가지타 교수의 연구 의욕은 여느 젊은 과학자 못지않았다. 그가 이날 서울에 온 것도 지난달 29∼30일에 이화여대에서 열린 ‘카그라(KAGRA) 국제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카그라는 일본이 기후(岐阜)현 깊은 산속에 건설 중인 세계 세 번째 중력파 검출기. 중력파는 우주에서 블랙홀 등 거대한 천체가 속도를 바꾸며 움직일 때 시공간을 뒤흔들며 전달되는 거대한 파동이다. 카그라는 이것을 검출하는 지구에서 가장 정교한 기계다. 1년 안에 건설이 완료되면, 기기 보정을 한 뒤 내년 말부터 본격적인 우주 관측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현재 ‘연구대표자’를 맡아 건설과 국제 협력을 이끌고 있다.

중성미자와 중력파는 한 분야만 연구하기에도 벅찬 심오한 세계다. 두 분야의 거리를 비유하자면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 사이보다도 훨씬 멀다. 내심 그가 연구 분야를 바꾼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두 분야는 천문학에서 만난다”며 “새로운 눈으로 미래의 천문학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가지타 교수는 한국의 중력파 연구진에도 강한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10여 개국이 참여 중인 카그라 국제협력단에서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소속 한국 과학자의 인원이 일본 다음으로 많다”며 “데이터 해석 등 강점을 지닌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노벨 물리학상#도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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