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과학기술 수준요? 알파고 등장 이전에 북한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이 세계 정상을 다툴 정도였으니 뛰어나다고 봐야죠.”
18일 서울 강남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박찬모 평양과학기술대 명예총장(83)은 북한의 과학기술 수준이 일부 분야에선 글로벌 수준급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컴퓨터공학 가운데 소프트웨어, 바이오기술 등의 분야는 글로벌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003년부터 4년간 포스텍(포항공대)에서 총장을 지낸 그는 2009년 평양과학기술대가 설립되면서 명예총장에 취임했다. 미국 시민권자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 9월 미국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며 미국 시민의 북한 출입이 불허되기 전에는 1년의 절반가량은 평양에서 지냈다. 그는 한국바이오협회 등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박 총장은 “컴퓨터공학 중 소프트웨어 분야는 미국의 기술 수준이 100점이라고 했을 때 북한은 90점을 줄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소프트웨어는 그의 전공 분야다. 그는 “북한의 AI 바둑 프로그램 개발자를 만나 개발 방법을 물었더니 유럽 등 선진국의 프로그램을 사온 뒤 분석해 더 나은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했다. 박 총장은 “북한은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의 1.5배에 이르는 시간을 수학 교육에 써 유능한 컴퓨터공학자가 나오기 좋은 토양”이라고 소개했다. 박 총장은 “컴퓨터공학 중 하드웨어 분야는 소프트웨어와 달리 낙후돼 있다”고 봤다.
박 총장은 북한의 바이오기술이 농수산품을 개량해 먹을거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계속되는 식량 문제 때문이다. 박 총장은 “10여 년 전에 한국 과학자가 감자를 북한 과학자에게 주며 ‘연구해보라’고 하고 나중에 가 봤더니 북한 과학자가 ‘배고파서 감자를 다 먹었다’고 한 적도 있었다”며 “최근 북한은 평양 대동강변에 메기 양어장을 만들어 연구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2002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토끼 복제에 성공하기도 했다. 박 총장은 “중국이 인간과 유전자(DNA)가 비슷한 돼지를 연구하는 데 북한 과학자를 많이 고용하고 있다”고 했다. 평양과기대 농생명학과 교원도 중국에서 일자리를 얻은 사례가 있다고 한다. 다만 박 총장은 “DNA 분석기계 가격이 워낙 비싸 북한에서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평양과기대 출신들이 대남 해킹 업무에 투입된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해킹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선발돼 일종의 ‘영재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 국적자의 북한 출입이 다시 허용되길 기대하고 있다. 당초 올해 8월까지로 예정돼 있던 출입금지는 1년 더 연장된 상태다. 평양과기대의 교수진 절반가량이 미국 국적자라 이들은 현재 인터넷 e메일을 통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박 총장은 정부가 이번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대통령과 동행하는 수행인사 가운데 과학기술계 인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남북 교류를 활성화해 중국으로만 진출하는 북한 과학자들을 남한이 활용하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냉전시대에도 미국과 소련은 과학기술 교류를 멈추지 않아 결국 양국 모두 우주선을 쏘아 올렸다”며 “우리도 교류를 통해 과학기술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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