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등을 통해 투병 생활을 해왔다. 같은 해 7월 한국영화배우협회가 주최한 ‘2017 한국을 빛낸 스타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며 “내 몸에 있는 암세포를 모두 떨쳐버리겠다. 기본 체력이 워낙 좋아서 걱정할 것 없다”고 의지를 다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4호실에 마련됐다.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고인은 이후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등 히트작에 출현해 당대 최고 스타가 됐다. 1964년에는 다수 멜로 영화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 엄앵란과 결혼했다. 1978년에는 박경원 전 장관의 특별보좌역으로 정계에 입문하고,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고인과 ‘은막의 콤비’였던 아내 엄앵란 부부의 삶은 늘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고인의 여성 편력이 화제가 되는가 하면, 2015년 채널A ‘나는 몸신이다’ 촬영 중 유방암을 발견한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모습으로 주변에 감동을 주기도 했다. 500여 개 작품에서 주인공만 맡은 그는 “늘 준비되어야 프로”라는 자세로 언제나 철저히 몸 관리를 했다. 2013년에는 49살 어린 여성 배우를 상대역으로 한 멜로 영화 ‘야관문:욕망의 꽃’에 출연해 화제와 논란을 일으켰다.
최근까지도 고인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등 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갔다. 내년 부산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유명 사진가의 가족을 다룬 영화 ‘소확행’(가제)을 준비 중이며, 건강이 회복하는 내년 5, 6월 경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생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고인이 정계 활동을 하다가 2005년 뇌물 혐의로 수감되었을 때 옥중 생활을 함께 했던 권노갑 전 국회의원은 회고록에서 “신성일은 과묵하고 담백한 사람. 나름대로 고집은 있지만 소신이 뚜렷하고 남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며 “‘장부다움’이 신성일의 지향점인지도 모른다. 내가 겪어본 신성일은 정말 남자다웠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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