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별세 …OB베어스 맨 먼저 창단한 야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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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3월 4일 1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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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3일 저녁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박용곤 회장은 1932년 서울에서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6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승직 상점’으로 두산그룹의 기틀을 잡은 박승직 창업주부터 따지면 3대째 장손이다.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1년 해군에 입대해 6·25 전쟁을 직접 겪었다. 제대 후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으며 1960년 두산그룹이 아닌 한국산업은행 공채 6기로 입행했다. 이는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다"라고 강조한 선친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박용곤 명예회장은 3년간 ‘남의 밥’을 먹은 후 1963년 동양맥주 평사원으로 발을 들였고, 이후 한양식품 대표와 동양맥주 대표,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고인은 인화를 중심에 두고 인재를 중시한 경영으로 '글로벌 두산'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고인은 "인재가 두산의 미래를 만드는 힘이다"라고 늘 강조했다.

두산그룹 회장 재임 시 고인은 국내 기업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단위 팀제를 시행하는 등 선진적인 경영을 적극 도입했다. 1994년에는 직원들에게 유럽 배낭여행 기회를 제공했고, 1996년에는 토요 격주휴무 제도를 시작했다. 또 여름휴가와 별도의 리프레시 휴가를 실시하기도 했다.

고인은 부단한 혁신을 시도했으며 창업 100주년을 한 해 앞둔 1995년의 혁신이 대표적이다. 경영위기 타개를 위해 당시 주력이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면서 유사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 33개에 이르던 계열사 수를 20개 사로 재편했다.

이어 당시 두산의 대표사업이었던 OB맥주 매각을 추진하는 등 획기적인 체질 개선작업을 주도해 나갔다.

이런 선제 조치에 힘입어 두산은 2000년대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면서 소비재 기업을 넘어 산업재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재계에서 고인은 모든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과묵한 성품으로 유명하다. 생전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인은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고인은 야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한국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 'OB 베어스'를 창단했고, 어린이 회원 모집, 2군 창단에도 가장 먼저 나섰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원(두산그룹 회장), 지원(두산중공업 회장), 딸 혜원(두산매거진 부회장) 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지며,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발인과 영결식은 7일이며, 장지는 경기 광주시 탄벌동 선영이다.

동아닷컴 디지털뉴스팀 dn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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