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막 올리는 연극 ‘인형의 집…’, 부부로 만난 배우 손종학-서이숙
대화하는 법 모르는 현대인들, 소통에 대해 생각할 기회 될 것
“30년 넘게 무대에 올랐지만, 공연 직전까지 늘 배앓이와 대사를 까먹는 악몽에 시달려요. 많은 배우들이 이에 시달리는 걸 보면 일종의 직업병이죠. 그래서 연극 무대가 ‘늘 집처럼 편하다’는 말은 절반은 거짓말입니다. 하하.”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마 부장’과 ‘악녀’ 역할로 각각 대중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 손종학(52)과 서이숙(52)이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2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10일 막을 올리는 ‘인형의 집: Part 2’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다.
무대에 복귀한 소감을 묻자 손종학은 “거창한 소감은 필요 없다. 운 좋게도 제 스케줄이 잘 맞아 무대로 돌아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서이숙은 “실은 둘 다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장 트러블’로 고생하고 있다”며 “흔히 말하는 ‘군 입대 꿈’처럼 무대에서 머리가 하얘지거나 무대 의상을 잃어버리는 악몽과 매일 밤 싸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인형의 집…’은 국내 초연 작. 페미니즘 연극의 고전으로 꼽히는 1879년의 ‘인형의 집’을 모티브로 미국 극작가 루커스 네이스가 2017년 새로운 스토리를 입혔다. 결혼 제도의 모순을 느끼고 가출한 여성 ‘노라’의 15년 뒤 모습을 상상해 극에 녹여냈다.
노라가 가출한 뒤 고생했을 거란 막연한 편견과 달리 작품에서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승승장구한다. 돈도 많이 벌고, 연하 애인과 사랑에 빠진다. 서이숙은 “극 초반 노라가 집에 돌아오는 장면에선 멋지고 당당한 여성을 표현할 것”이라고 했다.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남편과 마주한 노라는 딸과 유모도 만나며 설전을 벌인다. 서이숙과 우미화 배우가 노라를 맡았고, 손종학과 박호산 배우가 남편 토르발트를 연기한다.
두 배우는 작품의 방점을 ‘소통’에 찍고 있다. 서이숙은 “사람들이 갈등하는 건 결혼 제도의 모순이나 가정 내 성적 불평등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소통의 부재 때문”이라며 “서로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현대인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손종학은 “그동안 기득권 안과 밖에서 살아온 남성과 여성이 소통하지 못했던 상황들을 표현하려고 한다”며 “외국 작품임에도 한국 관객들에게 와 닿는 바가 더 클 수도 있다”고 했다.
15년 만에 만난 노라와 가족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에 두 배우는 “결말은 열려 있다”고 답했다. 제작진과 배우들은 실제 연습에서도 결말의 방향을 두고 끝없이 고민했다.
손종학은 “부부가 전혀 변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적어도 서로의 입장 정도는 이해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서이숙은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첫출발’은 한 것”이라며 “관객들 역시 ‘저 남자의 생각이 과연 변했을까’ ‘사회적 장벽들이 사라졌을까’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품 속 캐릭터에 이입해 말을 이어가던 두 배우는 “근데 살아보니 사람은 절대 쉽게 안 변하는 것 같다”며 크게 웃었다.
30년 넘게 배우로 살아온 두 사람에게도 절대 변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연습 기간 중엔 맡은 캐릭터처럼 사는 것이다. 서이숙이 “작품의 화두가 소통인 만큼 어느 순간 술자리에서 말을 줄이고 남의 얘길 듣는 저 자신을 발견했다”고 하자, 손종학은 “어딜 가든 온전히 즐기질 못하고 늘 배역에 묶여 있는 게 배우들의 직업병이자 숙명”이라고 했다.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엘지아트센터. 3만∼6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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