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팔 움직이기도 힘든 물속 잠수사들, 실종자 가족 떠올리며 사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1일 03시 00분


‘허블레아니’호 수색 작업 전한 니리 이반 헝가리잠수협회장

8일(현지 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헝가리잠수협회 니리 이반 회장은 인터뷰 도중 수중 작업을 마치고 나온 헝가리 잠수부 사진을 보여주며 “1시간 정도 작업을 마치면 이처럼 ‘탈진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서동일 특파원
8일(현지 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헝가리잠수협회 니리 이반 회장은 인터뷰 도중 수중 작업을 마치고 나온 헝가리 잠수부 사진을 보여주며 “1시간 정도 작업을 마치면 이처럼 ‘탈진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서동일 특파원
《“물살이 빨라서 눈앞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유속이 시속 6km 정도죠. 모든 것을 직감으로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잠수부들이 착용해야 하는 장비 무게가 70kg이 넘습니다. 게다가 ‘허블레아니’호 사고 지점은 수심이 7m 정도로 잠수할 때 받는 수압도 상당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팔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1분도 버티기 힘들죠. 하지만 우리에겐 맡겨진 임무가 있습니다. 반드시 실종자를 찾아야 합니다. 잠수부들은 1시간 가까이 사투를 벌입니다. 물 밖으로 나올 때는 녹초가 됩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을 떠올리며 사력을 다합니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니리 이반 헝가리잠수협회장(69)이 전한 ‘허블레아니’호 수색 작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는 다뉴브강을 ‘빠르게 돌아가는 세탁기’로 표현하며 “한국과 헝가리 잠수부 모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오직 감각에만 의존해 작업해야 했다. 내가 겪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33명과 헝가리인 선원 2명을 태운 소형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는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호가 추돌하면서 침몰했다. 한국 정부합동신속대응팀과 헝가리 대테러센터(TEK)는 선체 내부나 강 하류에 남아 있을 실종자 수색에 총력을 기울였다. 선체 수색 및 인양을 위해 ‘안전규정’까지 어기며 반복해서 몸을 던지는 헝가리 잠수부의 노력은 헌신적이었다.

허블레아니호 선체 인양 준비가 한창이던 8일 오후(현지 시간) 부다페스트의 한 카페에서 니리 회장을 만나 헝가리 잠수부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헝가리잠수협회는 수색 초반부터 참여한 하버리안팀을 비롯해 민간 잠수팀 43개가 소속된 정부 산하 단체다. 니리 회장은 사고 이후 매일 현장을 찾아 잠수부의 건강을 살피며 작전을 지도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라고 말한다.

“보통 1시간 정도 이어진 잠수로 몸은 이미 탈진된다. 하지만 선체에서 수습한 시신과 함께 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물살은 거세고 소용돌이가 친다. 한 걸음조차 내딛기 쉽지 않다. 그런데 혼자 물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육지에서는 통신선을 통해 ‘서두르지 말라’고 소리치지만 그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도 많다. 잠수부들은 시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거친 물살에 휩쓸릴 수도 있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노력해서 마음을 잡아야 한다. 이렇게 잠수부들이 큰 사고 없이 수색을 이어가는 것도 기적이다.”

―날씨, 유속, 수위 등 변수가 많은데….

“허블레아니호 선체는 다뉴브강 속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상류 쪽으로는 아예 접근이 불가능하고 하류 방향을 중심으로 수색 및 인양 준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언제든 배가 움직일 수 있는 위험도 있었다. 온갖 부유물이 떠다니고 물 흐름도 수시로 바뀐다. 헝가리 잠수부도 다뉴브강이 무서울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과제였다. 긴장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니리 회장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침몰 사고 현장에서 막 수색을 마치고 나온 헝가리 잠수부의 사진이었다. 하얗게 김이 서린 노란 헬멧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은 살짝 감겨 있었다. 진이 다 빠진 듯 몸은 축 처졌다. 쇠로 만들어진 신발과 허리에 찬 납덩이, 공기와 통신을 지원하는 굵은 선 등 잠수부 몸에는 수많은 장비들이 칭칭 감겨 있었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어린 모습도 사진에서 그대로 묻어났다.

수색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강이 잠잠해지면 좋았겠지만 수위는 요지부동이었다. 수심은 4.5m 안팎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다뉴브강은 3월 말, 5월 말∼6월 초 두 차례 수심이 깊어지고 물살이 빨라진다. 3월에는 알프스산맥의 눈이 녹고 5월 말에는 헝가리 상류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일인 지난달 29일 이후 수위에 영향을 줄 만한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수위에 변함이 없었던 것은 알프스 지역 기온이 30도를 넘으면서 눈이 빠르게 녹았기 때문이다.

―헝가리 잠수부 대부분은 한국과 별다른 인연이 없을 텐데….

“헝가리 민간 잠수부들은 아마도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내가 가야 한다. 내가 힘을 보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직감했을 것이다. 돈이나 보상을 바라고 참여한 사람은 없다. 확신할 수 있다. 이번 사고 수습을 도우려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인원만 1000명을 훌쩍 넘는다. 인구 1000만 명의 작은 나라에서 이런 규모는 적은 수가 아니다. 하버리안 등 민간 잠수팀은 사고 직후 현장으로 출동했고 대테러센터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런 전례가 없었다.”

―잠수부들과는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나.

헝가리대테러센터(TEK) 본부를 찾아 잠수 작전을 지도하고 있는 니리 회장. 헝가리잠수협회 제공
헝가리대테러센터(TEK) 본부를 찾아 잠수 작전을 지도하고 있는 니리 회장. 헝가리잠수협회 제공
“매일 현장을 찾아가지만 잠수부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지는 않았다. 작전을 마친 잠수부들은 대부분 녹초 상태라 일부러 말을 걸지 않는다. 한국 잠수부들이 말없이 헝가리 잠수부의 어깨를 두드리고, 손을 꼭 잡는 것만으로 말보다 더한 끈끈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모습을 자주 봤다. 옆에서 격려하며 조용히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는다.”

한국과 헝가리 잠수부들은 3일 첫 수색에서 한국인 여성 시신 1구를 수습했다. 다음 날에는 선체 창문에 끼여 있는 시신을, 그 다음 날에는 선체 창문 밖으로 나와 있는 팔을 발견해 시신을 수습했다. 헝가리 대테러센터는 수색 작업 전 헝가리 잠수부가 실종자 시신을 발견해도 시신을 물 밖으로 꺼내 수습하는 역할은 한국 측에 맡기기로 했다. 한국 정부가 가족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유가족의 마음을 배려한 결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언론에서 한국과 헝가리 잠수부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제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장에 있는 모든 잠수부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 소식이었다. 수색 초기 상황을 판단하고 구조 방식을 정할 때 바다 경험이 많은 한국 수색팀과 다뉴브강 현지 사정에 밝은 헝가리 수색팀의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다. 이런 통상적인 의견 조율 과정이 ‘한국이 헝가리의 늑장 대응에 답답해했다’ 등으로 와전되면서 오히려 갈등이 불거질 뻔한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한국과 헝가리 잠수부의 의견 대립이 심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헝가리 잠수부들은 한국 구조팀이 경험 많고 준비가 잘된 상태에서 현장에 도착했다고 여러 차례 칭찬했다. 한국 잠수부도 전통 과자 등을 건네며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언어와 경험, 문화가 다르니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갈등이 있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서로 미흡한 부분을 채워 주며 협업했다.”

―한국 측이 선체 진입을 주장했으나 헝가리 측은 ‘우리는 영웅이 필요하지 않다’며 반대했는데….

“(사고가) 얼마나 큰 아픔이고 어떤 마음으로 한국 잠수부들이 현장에 왔는지 그 절실함을 이해한다. 그러나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헝가리뿐만 아니라 한국 잠수부도 마찬가지다. 시신을 찾으려고 산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다.”

니리 회장은 한국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반려견과 함께 찍은 손자의 사진이었는데 얼핏 한국인처럼 보였다. 니리 회장은 “사위가 한국인이다. 덕분에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를 많이 접했고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 이후 가족과 함께 사고 지점인 머르기트 다리를 찾았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꽃을 놓고 기도했다.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 작업을 위해 달려온 헝가리와 한국 잠수부의 안전을 빌었다.

니리 회장은 인터뷰를 마칠 무렵 “전해줄 것이 있다”며 카페 밖에 주차된 자신의 차량으로 안내했다. 조수석에는 유기농 사과주스가 쌓여 있었다. 그는 “사과 농장을 하는 헝가리 여성 다이버 선수 아버지가 한국 잠수부에게 전해 달라며 포장해 줬다”며 “이번 사고를 두고 매우 안타까워하는 헝가리인이 많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사과주스를 한국 정부합동신속대응팀 본부에 전달했고, 한국 측 관계자는 니리 회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니리 회장은 “이번 사고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이를 계기로 양국이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부다페스트=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헝가리 부다페스트#다뉴브강#허블레아니호#잠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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