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생리의학상 케일린 교수 방한
과학의 장점은 예측불가능성
모든 순간을 큰 성공위해 투자말고 작은 발견도 기쁘게 연구해야
“과학자는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인생이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니까요. 그러니 모든 순간을 큰 성공을 위해 투자하지 말고 작은 발견을 통해 ‘소확행(small joy)’을 얻어야 합니다. 이런 기쁨이 10년, 20년 쌓여 큰 발견이 옵니다.”
인류의 가장 큰 적 중 하나인 암을 연구하는 노벨상 수상자의 조언은 의외로 소박했다. 하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 진정성이 느껴졌다.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케일린 미국 하버드대 데이나파버 암연구소 교수(62)는 5일 오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첨단소재연구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위기 극복 경험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케일린 교수는 우리 몸의 세포가 산소 공급이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과정을 유전자와 단백질을 사용해 밝혀 피터 랫클리프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교수, 그레그 서멘자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교수 등과 함께 지난달 7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이날 UNIST 강연 및 7, 8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대한종양내과학회 기조강연을 위해 방한한 그는 “과학의 장점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라며 “남들이 강요하는 ‘임팩트 팩터(IF)’ 등 논문에 점수를 매기는 수치적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작은 발견도 기쁘게 연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케일린 교수의 삶과 연구는 기초과학이 갖는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준 극적인 사례로 꼽힌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그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우연한 기회에 의학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그중에서도 기초연구에 몰두하게 된 그는 노벨상 수상 업적과는 언뜻 전혀 관련이 없는 유전병 분야를 연구했다. 특히 망막이나 신경, 혈관 등에 악성종양을 발생시키는 유전병인 폰히펠린다우 증후군을 연구하던 중에 이 병과 관련한 유전자가 세포의 체내 산소 농도 감지 및 조절에 핵심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로 그는 20여 년 뒤 노벨상을 수상했고, 이를 응용한 각종 치료제 연구도 활발하다. 유머러스한 성격의 그는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 말씀이, 어디서 낚시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나는 운 좋게 그런 분야를 택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의 연구는 체내에서 산소가 부족할 때 생기는 빈혈과 대사성 질환, 심장마비, 뇌졸중 등 다양한 병과 관련이 있다. 특히 조직 내에 급속도로 세포 수를 늘리는 암은 몸속 산소를 고갈시키는 대표적 병이다. 암에 산소를 공급해줄 혈관의 성장 속도가 느리면 저산소 상태가 돼 암도 성장을 멈춘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조절해 암을 치료하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케일린 교수는 “아직은 갈 길이 멀다”며 “두 가지 관련 단백질(HIF) 가운데 신장암과 관련된 하나를 조절하는 빈혈치료제가 나와 있지만 많은 암과 관련이 있는 다른 단백질을 조절하는 치료제 개발은 아직 요원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조차 제약사는 기초과학에 쉽게 투자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며 “20여 년째 제약사의 이사진으로 활동하며 기초연구의 유용성을 설득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초과학과 제약 사이의 연계가 잘 이뤄지도록 하는 게 최근 나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