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강풍이 불었다.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걸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새벽까지 기다렸다. 굉장히 긴 밤이었다. 그래도 눈앞이 캄캄해진 사람들에게 위로만 할 게 아니라 눈앞을 보이게 해드리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낙연 국무총리(67)는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총리 이낙연의 인생 장면’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올해 4월 4일 강원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 사태를 들며 당시를 회상했다.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와 정부라면 각론을 갖고 그런 분들께 삶의 앞날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전날(21일)에도 화재 발생 이후 네 번째로 고성군을 찾아 이재민들의 상태를 살피고 피해 복구 상황을 챙겼다. 》
정치권에선 이 총리가 최근까지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배경 중 하나로 어느덧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현장 중심 디테일 행정을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역대 많은 정치 지도자가 말로는 현장 행정 구현을 외쳤지만 실제론 국민들에게 제대로 체감되지 않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총리는 “현장은 문자 그대로 시작이자 끝이다. 정치, 행정, 정책도 모두 현장에서 나와서 현장에서 끝난다”며 “뭐가 문제인지, 그것이 과연 해결됐는지 알아보려면 결국 현장을 가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균 후보자의 국무총리 지명으로 이제 정치권의 시선은 그의 퇴임 후 행보에 쏠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해 내년 4월 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당의 대주주인 친문(친문재인) 그룹과의 역학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지 하나하나가 여권 내 정치 지형은 물론이고 차기 대선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요소들이다. 이 총리는 총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렇지만 총선 이후 펼칠 ‘이낙연식 정치’에 대해서는 ‘실용적 진보주의’라는 기조 아래 디지털 경제부터 한반도 주변 강국과의 신뢰 외교까지 풀어냈다. 출산율 저하 대책에 대해선 가장 어려운 이슈라며 ‘문화인류학적 고민’까지 털어놓았다. 이날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 집무실에서 2시간가량 이어졌다.
○ “정치·행정, 각론 부족하면 국민은 답답”
―차기 지도자 여론조사에서 1위를 오래 지키고 있는 것은 안정감과 함께 이 총리 특유의 업무 처리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우리의 정치와 행정이 아직도 총론에 맴도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국민의 삶은 각론으로 고통받는데, 정치와 행정은 각론이 부족하다면 국민은 답답하게 생각할 것이다. 저라고 특별히 다르겠냐만 현장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아는 편이라고 국민이 느끼는지 모르겠다.”
―기존 정치인에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라고 보나.
“강원도 산불 때 보통의 정치인들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것들을 본 게 아닌가 싶다. 총리가 현장에 가서 (집에서 빠져나오느라) 혈압약 챙겼느냐고 묻고, 볍씨 탄 것 무상으로 드리겠다고 하자 ‘희한한 사람이다’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각론이 없는 정치행정이나 정책은 공허하다. 각론도 매우 구체적인, 개개인의 삶에서 가장 갈급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 예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야당 국회의원일 때 호남선 복선화에 35년이 걸렸다. 그때 DJ가 이랬다. ‘개미가 기어가도 갔겄소.’(웃음) 그런 답답한 느낌이 국민에게 있지 않나 싶다.”
―재임 기간 동안 공직사회의 태도 변화를 많이 이끌어냈다고 평가하나.
“지난주 총리실 직원들과 송년 만찬을 했는데 ‘과거보다 훨씬 더 총리실 위상이 높아진 것 같다’고 하더라. 부처들이 훨씬 협조적이고 자기들도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하더라. 여러 부처가 참여하는 회의 안건을 내가 사전에 보고받는다. 미세한 보완도 있고 어떤 건 통렬하게 얘기한다. ‘회의에 상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전개의 순서나 각론의 보충이라든가, 이유로서 설명되는 걸 대대적으로 보완해 달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땀이 날 거다. 지금까지는 격화소양(隔靴搔양), 신발을 신고 가려운 발바닥을 긁는 것처럼 현실과 거리가 먼 정책이 더러 있었다.”
―정치인으로서 공직사회에서 쓴소리를 많이 하는 데 대한 부담은 없나. 다 우군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 아닌가.
“있다. 있지만 그것 때문에 (공직 변화를) 포기할 순 없었다. 인심을 얻기 위해서 ‘이래도 좋다 저래도 좋다’, 나는 그게 잘 안된다(웃음).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해 달라’ ‘살살해라’고 한다. 나는 야단을 쳐도 목소리를 높이진 않는다. 그런데 똑같은 말을 여러 번 해도 안 바뀌면 언성이 높아진다. 내 앞이니까 그러는지 몰라도 많은 걸 배웠다는 얘기들은 한다.”
―향후 정치적 행보와 관련해 가장 자주 거론하는 게 ‘실용적 진보주의’ 아닐까 싶다. DJ가 언급했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이낙연식 표현인가.
“DJ의 오랜 축적이 반영된 말씀과 비교되기엔 과분하다. (영향을 받은 것은 맞나.)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기류다. 워낙 다종다양한 문제들이 생기기 때문에 방향 하나만 보고 그런 문제들을 경시하고 갈 수 없다는 거다. 국민은 각론으로 고통받는데, 자꾸 총론적 방향만 얘기해선 안 된다. 실용과 진보 중 뭐가 더 중요한지도 미리 정할 필요가 없다. 방향성을 가지면서도 수단은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부동산 문제는 인간의 욕망과 거의 씨름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돈이 있는 사람이 특별한 노동을 하지 않고 돈을 많이 벌고, 그로 인해 절대 다수의 국민이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도와주기 위해 금융기관이 돈까지 빌려주는 게 과연 옳은가. 이를 막겠다는 건 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본다.”
―총리 재임 기간에 가장 후회하거나 아쉬운 게 있다면….
“후회보다는 마음이 가장 무거운 게 출산율 저하 문제다.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아니고서야 지구상의 모든 개체는 늘어나게 돼 있다. 저출산은 지구 생명체로서 처음 겪는 일이다. ‘나로서 살고 싶다’는 청년 여성들의 고민을 이해한다.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하지만, 행정으로 정책으로 변화를 유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인생을 먼저 살아보신 선배 여성들이 따님들과 인생, 가정,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굉장히 무거운 고민이다.”
○ “디지털 경제 이해, 약자에 대한 연민 필요”
―다음 정치 지도자가 인식하고 준비해야 할 이슈,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디지털 경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DJ가 정보기술(IT) 강국의 초석을 놨다면 문재인 정부는 ‘디지털 경제의 초석을 놨다’고 평가받아야 한다고 문 대통령께도 말씀드렸다. 사회 분야에선 갈등의 조정이 가장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지도자라면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약자에 대한 ‘심퍼시(sympathy)’, 즉 연민을 가져야 한다. 시장 질서대로 내버려둔다면 정부가 필요하지 않다.”
―국제 정치 지형에서 한국의 위치에 대한 정치 지도자의 고민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떤 스탠스가 필요한가.
“이럴 때일수록 신뢰가 중요하다. 큰 나라들 사이에 놓여 있는 우리로선 그게 숙명이다. 안보에서는 미국과의 신뢰가 흔들려서는 안 되고, 경제 관계에선 중국과의 신뢰가 흔들려선 안 된다. 일본과는 역사에서 시작된 문제가 최근 일본 지도자의 태도 때문에 감정적인 선으로까지 커졌다. 일본을 우정으로 대하는 사람으로서, 일본이 더 많이 후회할 거라고 생각한다.”
―대학생 때 하숙비를 못 낼 정도로 가난한 성장기를 보냈다. 이런 경험이 이 총리의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줬나.
“내 몸에 그런 정서가 피처럼 흐르고 있다. 대학 시절 1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하숙비를 못 보냈다. 1년은 입주 가정교사를 했고 이후 친구 자취방과 선배 하숙방을 전전했다. 내 대학 졸업 앨범에는 시신을 찍어놓은 것 같은 얼굴이 하나 있는데 그게 나다. 입대 영장이 나오자마자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군대를 갔다. 그런 경험이 약자에 대한 연민 같은 걸로 작동하는 것 같다. 나의 청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이제 다시 새로운 정치의 무대로 나서게 된다. 총리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은 언제인가.
“전남도지사 시절이다. 기자와 국회의원은 왕성한 문제의식으로 일한다. 그러나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수행되며, 때로는 왜곡되거나 악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모른다. 그것을 지사와 총리로 일하면서 더 알게 됐다. 선거 역시 도지사 선거가 가장 모험적인 도전이었다. 정치권에선 다들 (내가) 진다고 했다. 조직에선 내가 밀린 게 맞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치권은) 기존에 입력된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는 버릇이 있다 보니 다이내믹한 변화를 미처 못 본 거다.”
▼ “안보에선 美와, 경제에선 中과 신뢰 흔들려선 안돼” ▼
“상대 짓누른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험한 말 하는 사람들이 단명하더라”
―대선 주자로서는 세력과 계파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 국면에선 그 생각을 별로 하고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나를) 돕는 사람이 필요한 건 맞다. 다만 계파나 조직에 너무 함몰되는 정치가 발전적일까에 대한 의문이 있다. 좀 (상황을) 보자.”
―내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 출마 가능성이 있는가.
“아직 뭐라 얘기하기가 적절치 않다. 당의 생각을 알기도 전에 내 의사를 조금이라도 내비친다는 것은 당에 부담이 될 것 같다.”
―국회가 꽉 막혀 있다. 어떻게 해야 야당과의 협치가 가능할까.
“전무후무한 2017년 대통령 탄핵 여진이 이어지면서 최근 몇 년간 한국 정치는 특수한 상황에 놓였다. 내년 총선이 한국 정치의 큰 분기점이 될 것이다. 총선 결과에 따라 협치의 가능성이 열릴지, 아니면 극단의 정치가 지금보다 기승을 부릴지 갈림길에 있다. 자칫 유럽을 휩쓰는 것 같은 극단의 정치가 득세할 수도 있다. 정당들이 자기 쪽만 돌아보면서 기대려 하지 말고 상대를 쳐다보면서 국가대계를 건설적으로 꾸려가야 한다.”
―이 총리 하면 ‘사이다 발언’으로 상징되는 말과 글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의 말과 글이 너무 거칠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상대편을 짓누른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우리 캠프, 반대 캠프가 아닌 그 가운데 회색 지대에 놓인 사람을 끌어오는 게 중요하다. 후임 대변인들에게도 이를 많이 이야기해 줬다. 그리고 대체로 보면 험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단명하더라.”
○ “문 대통령, 친구들과 막걸리라도 한잔 했으면…”
―역대 대통령들과의 추억이 남다를 듯하다. DJ,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각각 어떻게 기억돼 있는가.
“DJ는 말과 글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다. 기자나 교수 출신이 연설문을 써도 ‘혼이 없다’며 당신이 다시 쓰셨다. DJ가 존경받는 지도자라면 노 전 대통령은 사랑받는 지도자였다. 때로는 거칠게 보이는 것마저도 대중적 사랑의 원천이었다. 대통령 후보 시절 말실수를 한 게 화가 나서 대변인으로서 전화했더니 ‘제가 사고 쳤죠. 소주 한잔 합시다’ 이러더라.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문 대통령은 진지하고 신념이 강하다. 굉장히 치밀하게 생각하면서도 사람을 대할 때 따뜻하다. 술을 드셔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농담을 하지 않고 선을 지킨다.”
―문 대통령이 총리의 향후 거취와 관련해 “이제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놓아드리는 게 도리”라고 표현했다.
“과분한 말씀을 해주셨구나 생각했다. (지금의 평가는) 제 역량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의 따듯함과 배려가 반영됐다. 얼마 전 주례회동에서 ‘중점 관리 대상인 28건의 갈등 과제 중 18개가 개선됐거나 개선 과정에 있다’고 (퇴임 전) 결산보고를 드렸다. 그랬더니 ‘하나하나가 오랜 세월을 끈 문제였는데 총리님께서 참 수고 많이 하셨다’고 하시더라. 대통령은 자신의 뜻과 다르더라도 ‘왜 이렇게 못하냐’가 아니라 당신의 생각을 말씀해주신다.”
―떠나면서 문 대통령에게 고언을 해준다면….
“조금 더 여유 있게 일하셨으면 좋겠다. 때론 피로 기미도 보이신다. 친구들과 막걸리도 한잔 하면서 조금씩 쉬시는 게 좋을 거 같다.” ―스스로 “이낙연은 ○○○ 총리였다”고 평가한다면….
“많은 국민으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도 ‘좋은 총리였다’고 기억된다면 영광이겠다.”
인터뷰=이승헌 정치부장 / 정리=황형준 constant25@donga.com·김지현 기자
▼ 李총리, 바지 뒷주머니엔 항상 ‘깨알 수첩’ ▼
정책구상-대화내용 빼곡히 적어… 4월 강원산불 8쪽 메모 화제 공무원들에도 업무문화로 확산… 수첩 한권 다 쓰는데 한달 안걸려
이낙연 국무총리의 바지 오른쪽 뒷주머니엔 항상 종이 수첩 한 권(사진)이 들어있다. 매일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주요 발언부터 순간순간 떠오르는 정책 구상이나 아이디어까지 빼곡히 적는 ‘깨알 수첩’이다. 올해 4월 강원도 산불 당시에도 통신장애부터 잔불 정리, 뒷불 감시, 이재민 대책 등 재난 발생에 따라 필요한 조치들이 8쪽에 걸쳐 적힌 그의 수첩이 화제가 됐다.
22일 인터뷰를 할 때도 뒷주머니에 수첩이 있었다. 하루 전날인 21일 산불 발생 후 네 번째로 방문한 고성 산불 피해 복구 현장에서 파악한 추가 관련 조치들을 적었다. 글씨는 금세 알아볼 수 있게 굵은 사인펜으로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어느덧 자신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가 된 수첩에 대해 이 총리는 “하다 보니 쓰는 게 습관이 됐다”고 했다. 21년 기자 생활을 하면서 굳어진 습관이다. 그는 “쓰면 훨씬 더 기억이 되고 머릿속에 남는다”고 했다. 이 총리는 “20여 명과 저녁에 막걸리를 마시며 간담회를 하더라도 메모를 하기 때문에 끝날 때쯤엔 전원의 성함과 직함을 기억할 수 있다”며 “30명까진 즉석 암기가 가능하다”고도 했다.
이 총리의 메모 습관은 그가 총리로 재직하는 2년 6개월여 사이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하나의 업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총리는 “(회의에) 배석하는 국장이나 차관이 (수첩에) 메모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있거나, 회의 자료 뒤쪽에 끄적이는 걸 보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저러지’ 싶어 갑갑하기도 했다”며 “내가 배석자들에게 일일이 답변을 요구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점 수첩에 메모하는 고위공무원들이 늘더라”고 했다.
그는 평소 다 쓴 수첩은 침대 머리맡 서랍에 보관하다 서랍이 꽉 차면 다른 서랍으로 옮겨둔다고 했다. 수첩 한 권을 다 쓰기까지 한 달이 채 안 걸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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