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임세원 교수 의사자 인정 길열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1일 03시 00분


2018년 진료중 환자에 흉기 피습… 간호사들 먼저 대피시키다 숨져
법원 “의사자 인정을” 유족 손들어줘

“고인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죽음으로 인정되고 유족들이 정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어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 유족 측 법률대리인은 10일 법원의 선고 직후 이같이 말했다.

진료 중이던 환자에게서 흉기로 위협을 받는 와중에도 자신의 목숨보다 동료 의료진과 환자들을 지키려던 임 교수.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음에도 의사자(義死者)로 인정받지 못했던 그가 법원의 판결로 의사자로 지정받을 수 있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이상훈)는 이날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은 보건복지부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그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고인이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간호사 등 동료를 구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유족 측의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임 교수는 2018년 12월 31일 자신이 진료해 왔던 조현병 환자 박모 씨(32)로부터 상담 도중 흉기 공격을 당했다. 임 교수는 박 씨가 흉기를 꺼내 위협하자 진료실 밖으로 뛰쳐나온 뒤 탈출이 용이했던 진료실 근처 계단이 아닌 간호 스테이션(업무공간)이 있는 복도 쪽으로 향했다. 이후 간호사들을 향해 “도망가라. 신고해라”라고 외쳤다. 그 사이 박 씨는 임 교수를 쫓았고, 결국 범행을 저질렀다. 임 교수의 이 같은 행적은 병원 폐쇄회로(CC)TV에 담겨 있다.

유족 측은 지난해 3월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해 달라며 정부에 신청했다. 하지만 복지부 의사상자심의위원회는 지난해 6월 “고인이 직접적 적극적으로 간호사를 구조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임 교수에 대한 의사자 인정을 거부했다. 현행 의사상자 등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의사상자로 지정되려면 ‘자신과 관계없는 제3자에 대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이면서 구체적인 구조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의위는 임 교수의 행위가 이 같은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의사자로 인정되면 유족에게 일부 보상금과 공직 지원 시 가산점 부여 등의 지원이 이뤄진다.

유족 측은 재심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자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 등을 토대로 임 교수가 적극적으로 구조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해 복지부에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유족 측 김민후 변호사는 “임 교수가 충분히 대피할 수 있었음에도 간호사와 환자를 대피시키기 위해 위험한 동선을 선택한 상황을 설명한 영상 등이 재판부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항소를 하지 않아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복지부는 판결 취지에 따라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해야 한다.

임 교수를 살해한 박 씨는 올해 5월 대법원에서 징역 25년형이 확정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고인#죽음#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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