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은명내과 원장
1941년부터 판자촌 돌며 무료진료… 1984년 상계동에 개원 1년뒤
‘자존심 다칠라’ 1000원 진료로 바꿔… 평생 모은 53억 상당 땅 연대 기부
“잠시 관리했던 재산 사회 돌려줘”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전인 1980년대, 가난한 이웃을 위해 모든 환자의 진료비를 1000원만 받았던 김경희 은명내과 원장이 2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0세.
1920년 서울 출신인 고인은 세브란스의전(현 연세대 의대)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의전 2학년생 때인 1941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조선보육원 어린이들의 무료 진료를 시작으로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역에서 중국 만주나 일본에서 돌아온 교포를 치료했다. 이후 서울 판자촌을 돌며 무료 진료를 이어갔다.
1984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자락의 판자촌에 은명내과를 열었다. 개원 후 1년은 무료 진료를 했다. 하지만 환자가 많이 오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에 무료 진료를 기피하거나 진료의 질이 낮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환자의 진료비를 1000원씩 받기로 했다. 1980년대 택시 기본요금이 800원 정도였다. 고인이 ‘상계동 슈바이처’라 불린 건 이때부터다. ‘1000원 진료’는 건강보험 제도가 실시되기 전인 1989년 7월까지 계속됐다.
사회사업도 활발히 펼쳤다. 은명장학회(1985년), 은명심장수술후원회(1986년), 은명무료독서실(1990년)을 운영하며 경제적 형편이 어렵거나 몸이 약한 이들을 도왔다. 이 같은 공로로 대통령 선행 시민상, 아산사회복지대상, 보령의료봉사상 등을 받았다.
1996년 4월에는 모교인 연세의료원에 평생 모은 전 재산인 토지(21만4876m²)를 기부했다. 당시 감정가로 53억 원에 이르는 규모였다. 고인은 당시 인터뷰에서 “1000원만 받고 진료를 한 것은 어떤 재산도 개인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며 “잠시 관리했던 재산을 이제 같은 마음으로 사회에 돌려주려고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23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 앞에는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안내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유족들은 평소 “내가 죽으면 모두가 마음의 부담 없이 올 수 있게 하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유족은 부인 임인규 씨와 아들 교인 교철 씨, 딸 교진 교영 씨가 있다. 발인 24일 오전 7시. 02-2227-755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