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초등학생 강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을 복역한 정원섭 목사가 28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 목사는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제 주인공이다. 정 목사는 30일 경기 용인시 ‘평온의 숲’ 추모관에 안장됐다. 2018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정 목사는 생전에 아들 정재호 씨(58)에게 “법정에서 국가의 잘못이 인정되어야 한다. 정의가 살아 있는 한 국가에서 바로잡아 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물고문 한 뒤 “범행 자백했다” 발표한 경찰
정 목사는 1972년 9월 강원 춘천시에서 11세 여아가 성폭행을 당한 뒤 숨진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의 집 근처에서 만화방을 운영하던 정 목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정 목사는 사흘 동안 물고문 등을 받은 뒤 허위 자백을 했고 경찰은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고 발표했다. 재판에 넘겨진 정 목사는 이듬해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 목사는 1987년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정 목사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1997년 박찬운(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영화 정영대 변호사 등을 만났고 이들의 도움을 받아 1999년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동아일보도 변호인단과 함께 사건 기록을 검토하며 전국 각지에서 당시 피해자의 부검의와 수사 경찰 등을 인터뷰해 2001년 13차례에 걸쳐 탐사보도를 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 끝내 국가 배상 못 받고 눈 감아
다행히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재심 권고를 내리자 정 목사는 법원에 2차 재심 청구를 했다. 대법원은 2011년 정 목사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정 목사는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정 목사는 국가 배상 소송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서 패소했다. 2심이 진행되던 도중 다른 사건에서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사람이 손해배상 소송을 낼 때는 형사보상이 결정된 뒤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정 목사는 6개월에서 10일을 경과해 소송을 제기했다.
정 목사의 아들 정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버지처럼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입법운동 등에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2018년 표창원 전 의원이 이른바 ‘정원섭법’을 발의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정원섭법’은 경찰 등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사람이 국가배상을 청구할 경우 청구권 소멸 시효 때문에 억울하게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없도록 국가배상법을 개정한 것이었다.
정 목사의 재심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인단의 임영화 변호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첫 재심 청구가 2001년 서울고법에서 기각된 뒤 ‘미안하다’는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정 목사님이 먼저 ‘저는 끝났다고 생각 안 합니다. 변호사님도 기운 빠져하지 말고 힘내주세요’라며 위로를 건네더라”며 “진실을 향한 필생의 염원이 정 목사님에게 그런 힘을 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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