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수의 소수의견을 제시해 ‘사법부 내 재야’로 불리던 이홍훈 전 대법관(사진)이 11일 별세했다. 향년 75세.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77년 판사로 임관한 고인은 35년 동안 법관의 삶을 살았다. 노무현 정부 때 대법원장 제의를 받았지만 ‘대법관이 대법원장을 하는 것이 순리’라며 고사했고, 환갑을 맞이한 2006년 뒤늦게 대법관에 올랐다.
대법관 재직 때 고인은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에서 진보 성향의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전수안 전 대법관과 함께 ‘독수리 5형제’로 불렸다. 2011년 대법원 전합에서 ‘파업을 당연히 업무방해죄로 봐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사용자에게 막대한 손해가 있을 때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도록 판례 변경을 이끌어냈다.
‘4대강 사업 집행정지 신청’ 사건의 주심으로서 국책 사업도 적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직접 써 화제가 됐다. 6년 임기를 1년 앞둔 2011년 정년퇴임하면서 퇴임사에 ‘대법관 이홍훈’이 아닌, ‘법관 이홍훈’이라고 적었다.
고인은 퇴임식 직후 낡은 소형차를 타고 전북 고창의 고향 집으로 내려가 나무와 꽃을 가꾸며 살았다.
공익 활동을 늘 강조하며 화우공익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공익 논집의 이름을 ‘우주일화’(宇宙一花·우주는 한 송이 꽃이어서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운명체라는 뜻)라고 직접 지었다.
4년 전 담도암 진단을 받고, 간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지만 늘 “하루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다”며 ‘생사일여(生死一如)’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한 전직 법원장은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도 2018년 사법발전위원장을 맡아 전관예우 실태 조사와 법원행정처 폐지, 고법 부장 제도 폐지 등을 제안했다”고 평가했다. 고 조영래 변호사와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친구라는 말을 자주 했던 고인은 각각 31년 전, 10년 전 세상을 떠난 친구 곁에서 영면하게 됐다.
고인의 빈소는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 11일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유족은 부인 박옥미 씨, 아들 도헌 씨 등이 있다. 발인은 13일 오전 8시. 031-78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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