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때 조선군 코-귀 베어 묻어… 日시민단체 ‘교토평화모임’ 주최
하토야마 前총리도 부인과 참석… 민단-총련도 이례적 함께 헌화
“일본인이 희생자에게 사죄하고, 한국인이 일본 용서해 줬으면…”
《8일 일본 오카야마현 히가시이치노미야에 있는 ‘귀무덤’에서 일본 시민단체가 위령제(사진)를 열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군의 귀와 코를 베어 와 묻은 잔혹한 역사에 대해 “선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한다”며 한국에 용서를 구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도 참석해 두 손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 일본인이 반성할 때 한일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8일 오후 일본 오카야마현 쓰야마시 히가시이치노미야의 주택가. 어른 머리만 한 돌이 3층으로 쌓여 있는 돌탑이 눈에 띄었다. 그 앞에 마련된 단상에는 사과, 떡 등 간단한 제사 음식이 차려졌다. 구슬픈 독경(讀經) 소리가 울려 퍼지자 참석자 약 30명은 눈을 감고 묵념했다. 이곳은 1597, 1598년 왜군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으로 조선군의 코와 귀를 베어 와 묻은 귀무덤이다. 420년 넘게 지난 시점에서 일본인들이 과거 만행을 반성하며 이날 오카야마 귀무덤에서 처음 위령제를 열었다.
행사를 주최한 일본 시민단체 ‘교토평화모임’의 아마키 나오토(天木直人) 회장대행은 개회사에서 “일한(한일) 관계가 전후 최악인 것은 일본인들이 침략 역사를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며 “오늘 진혼식을 계기로 일본인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게 돼 조선인 희생자에게 사죄하고, 그걸 본 한국인들이 일본을 용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토평화모임은 무지(無知)에 대해 반성하며 2019년 12월에 설립됐다. 귀무덤은 일본 곳곳에 있지만 도요토미를 추앙하는 신사가 있는 교토의 귀무덤이 가장 크다. 하지만 교토 시민들은 최근까지 귀무덤의 존재를 몰랐다. 교토평화모임은 ‘과거 불행한 역사를 바르게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진실 된 우호관계의 출발점’이라는 설립 목적을 내걸고 만들어졌다. “조선인들의 코와 귀가 묻힌 무덤에서 위령제를 열어야 할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며 작년부터 직접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동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올해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가 위령에 동참하고 싶다고 직접 연락했다. 하토아먀 전 총리는 8일 부인과 함께 참석해 “도요토미가 잔혹한 짓을 한 이후 400년 넘게 지났지만, 일본인으로서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김학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오카야마지방본부 사무국장과 오신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오카야마본부 상임위원장도 참여해 꽃바구니를 함께 쥐고 헌화했다. 지금까지 민단과 총련은 교토 귀무덤에서 각각 위령제를 열었다.
위령제에선 비석과 헌화대 제막식도 진행됐다. 오카야마 귀무덤은 지금까지 녹슨 안내판 하나만 있을 뿐 돌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사실상 방치된 것이다. 그러자 교토평화모임은 모금 활동을 벌였다. 250명이 적게는 1000엔(약 1만 원), 많게는 5만 엔을 기부해 50만 엔을 모아 비석과 헌화대를 만들었다. 비석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 출병(침략)에 희생된 조선반도(한반도) 사람들의 영혼을 애도하며 공양을 올립니다. 앞으로 오래도록 조선반도와 일본의 우호관계를 기원하며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두 손 모아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글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새겨졌다.
위령제가 열린 히가시이치노미야는 신칸센이 정차하는 오카야마역에서 한 시간에 한두 대 있는 지역열차를 타고 1시간 반 이상 달려야 도착하는 시골 마을이다. 독경을 한 오타니 요시히로(大谷義博) 스님은 이날 도쿄역에서 오전 9시 반 신칸센을 타고 6시간 넘게 달려 도착했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교토평화모임 명예회장이기도 한 그는 “너무나 뜻깊은 자리에 독경을 할 수 있어 영광이다. 이를 계기로 양국 관계가 나아지길 손 모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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