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15대 종정 추대 성파 스님
스승 월하 스님 이어 추대 첫 사례… 예술가의 삶으로도 주목받은 선승
도자대장경 10년 불사 등 이뤄내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말과 행을 같이하는 수행 중심으로 소임에 임하겠습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어려워 동체대비(同體大悲·천지중생이 나와 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킴) 사상과 호국 불교 사상을 유지해 나가겠습니다.”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에 추대된 뒤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고불식(告佛式)에서 나온 성파(性坡·82) 스님의 말이다. 성파 스님은 “오늘 추대는 됐지만 우주에는 해가 둘이 있을 수 없다”며 “아직 종정 스님이 계시기 때문에 추대됐다고 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성파 스님의 종정 임기는 내년 3월 시작된다.
종정추대위원회를 앞두고 성파 스님을 비롯해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 스님 등이 후보로 거론됐으나 큰 이견 없이 성파 스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하기로 뜻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총무원장이 종무 행정을 총괄하는 종단 대표라면 종정은 종단의 정신적 지도자다. 종정은 종단 행정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종헌·종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포상과 징계 등에서 권한을 행사한다.
성파 스님의 스승은 제9대 종정을 지낸 월하 스님이다. 1962년 통합 종단 출범 이후 출가로 인연을 맺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종정에 오른 첫 사례가 됐다. 성철 스님(6, 7대 종정)과 법전 스님(11, 12대 종정)은 법(法)으로 이어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성파 스님은 수행자이면서 예술가의 삶으로도 주목받아왔다. 팔만대장경을 일일이 새겨 도자기로 구워내는 도자대장경 불사(佛事)는 10년에 걸쳐 이뤄낸 큰 성과로 꼽힌다. 옻칠과 서화 전시회도 여러 차례 열었고, 100m 길이의 한지를 만들어 불화를 제작하고 있다.
성파 스님은 이전 인터뷰에서 ‘예술적 끼’에 대해 묻자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수행과 예술이 따로 있나? 뱀이 물을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잖아. 수행의 근본 바탕이 있으면 어떤 것을 해도 수행이다.”
수행과 일상을 구분하지 않는 불이(不二)의 정신은 성파 스님을 상징한다. 통도사 서운암에 머물며 주변에 야생화를 심어 토종 야생화의 소중함을 일깨웠고, 관심을 기울여온 서운암 된장은 ‘명물’이 됐다. “아유일권경 불인지묵성(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내게 한 권의 책이 있으니 그 책은 종이와 먹으로 된 게 아니다), 전개무일자 상방대광명(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펼쳐 보니 한 자도 없지만 항상 대광명을 놓는다). 일터가 선방이고 공부방이지. 백 마디 말보다 와서 보고 가라는 거지. 열심히 봐도 안 보이면 할 수 없고. 마음이 없으면 봐도 안 보이고 먹어도 맛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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