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하고 있는 임수아 씨(47·사진)가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그는 미술관이 소장 중인 조선 후기 무신 이기하(1646∼1718)의 묘지석(墓誌石·고인의 행적을 기록해 묘소에 묻는 돌판) 18점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2년 동안 현지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후손들을 위해 윤리적 결단을 내려달라”는 임 씨의 설득에 묘지석은 분실된 지 28년 만인 8일 국내로 환수됐다. 해외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도난품이 아닌 한국 문화재를 대가 없이 돌려준 건 처음이다.
10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백토 위에 청화 안료로 글씨를 쓰고 불에 구운 이기하 묘지석은 영조 10년(1734년)에 제작됐다. 묘지석에는 고인이 생전 훈련대장과 공조판서를 역임했다는 행적이 담겨 있다. 이조좌랑을 지낸 문신 이덕수(1673∼1744)가 글씨를 썼다. 묘지석에는 조선시대 도자기술과 서체의 역사가 담겨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이기하 묘지석은 1994년 한산 이씨 문중이 이기하의 묘를 이장한 후 관리하는 과정에서 분실됐다. 재단은 2015년부터 2년에 걸쳐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묘지석을 찾아냈다. 그때부터 미술관에서 한국문화재 연구를 담당한 임 씨와의 물밑 접촉이 시작됐다. 그와 재단이 주고받은 e메일만 수백 통. 묘지석의 원소유자가 한산 이씨 문중임을 파악한 재단은 임 씨를 통해 미술관 측에 이를 알렸다. 미술관은 1998년 한 미국인으로부터 묘지석을 무상 기증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넘게 클리블랜드미술관에 소장된 유물을 반환받기까지 임 씨의 역할이 컸다. 묘지석을 잃어버린 후손들을 위해 윤리적 결정을 내리자는 그의 논리가 한몫했다. 윌리엄 그리스워드 클리블랜드미술관장은 “우리는 한국 동료들과 함께 오랜 시간 협력해왔고 재단이 이 사안을 우리에게 알렸을 때 모두가 함께 올바른 결과를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임 씨는 홍익대에서 미술사학 석사과정을 밟은 뒤 미국으로 건너 가 캔자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8년 만에 묘지석을 돌려받은 후손 이한석 씨(77)는 “미술관 역사의 일부가 된 묘지석을 돌려주기로 한 결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기하의 묘소가 충남 예산군에 있는 점을 고려해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 묘지석을 기증하기로 했다. 이기하 묘지석은 올해 4월 초 기증행사와 특별전시회를 통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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