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흥부가’ 완창 도전 나선 교장 선생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4일 03시 00분


제1회 동아국악콩쿠르 은상, 왕기철 전통예술중고교 교장
20년만에 다시 국립극장 올라
“스승인 故한농선 명창께 바쳐, 무섭고 부담되지만 희망 선사할것”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22일 만난 왕기철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장은 “2019년 미국 워싱턴 케네디센터 공연에 이어 올해는 
교내 ‘아리랑예술단’의 이탈리아 공연을 추진한다. 전통의 내실을 다지는 한편 학생들의 국제 감각도 키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22일 만난 왕기철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장은 “2019년 미국 워싱턴 케네디센터 공연에 이어 올해는 교내 ‘아리랑예술단’의 이탈리아 공연을 추진한다. 전통의 내실을 다지는 한편 학생들의 국제 감각도 키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1985년 제1회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판소리 부문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차지했던 왕기철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장(59)이 다음 달 1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판소리 흥부가 완창에 도전한다. 현직 학교장의 판소리 완창 도전은 처음이다. 22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왕 교장은 “직책이 가진 무게가 가볍지 않으며 보는 눈이 많으니 무섭고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때로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왕 교장은 16세에 소리에 입문해 향사 박귀희 명창(1921∼1993)을 사사하고 전주대사습놀이, KBS 국악대상, 동아국악콩쿠르를 휩쓴 당대의 명창이다. 199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10여 년간 단골 주역으로도 활약했다.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무대는 당대 명창이 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왕 교장도 2002년 이 무대에서 이미 한 차례 흥부가를 선보였다. 꼭 20년 만에 같은 무대에 같은 레퍼토리로 선다. 당시 못 다 푼 한이 있다.

“저의 마지막 스승이신 한농선 명창(1934∼2002)께 바치는 무대나 다름없습니다.”

현 국립전통예술고의 전신인 당시 서울국악예술고에 함께 재직 중이던 한 명창이 어느 날 왕 교장에게 툭 던진 한마디가 깊은 인연의 뿌리가 됐다. “자네, 나한테 흥부가 한 바탕 안 배울랑가?”

1985년 동아국악콩쿠르에서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탄탄대로를 달린 왕 교장 입장에서도 ‘박록주제 흥부가’(명창 박록주가 다듬어 부른 흥부가)의 달인인 한 명창의 제안은 ‘귀한 말씀’이었다.

2001년, 사사한 지 반년 만에 흥부가 한 바탕을 떼고 스승께 “꼭 완창 무대를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의 완창 무대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숨을 거뒀다.

“믿기지 않았지요. 이번 무대에서도 스승님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

한 명창이 마지막 제자인 왕 교장에게 전수한 소리는 힘 있게 쭉쭉 뻗는 흥부가다. 흥부가 박 타는 대목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들었던 모든 관객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느낌으로 힘차게 목을 뽑아볼 작정이라고.

완창은 두 시간 반가량 걸린다. 왕 교장은 “목의 힘, 기억력의 한계로 앞으로는 완창 판소리를 고사하겠다”며 웃으면서도 2025년 9월까지 맡은 교장직만은 동편제 소리처럼 힘차게 수행하겠다고 했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이전에는 박동진 명창의 흥부가 중 ‘제비 몰러 나간다’가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죠. 이제 우리 소리 한 줄, 한 줄의 매력이 세계적 콘텐츠에 담겨 뻗는 시대입니다. 학교 설립자이자 제 첫 스승인 박귀희 선생의 뜻을 이어 후학을 세계적 인재로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석 2만 원.
#판소리 흥부가#한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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