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흥남철수 작전에 참여해 수많은 피란민의 목숨을 구한 로버트 러니 미 해군 예비역 제독(소장)이 10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1950년 12월 23일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7600t)의 일등 항해사로 흥남철수 작전의 마지막 구조 임무에 투입됐다. 레너드 라루 선장 등 47명의 선원들은 중공군에 밀려 포탄이 빗발치는 흥남항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배의 승선 정원은 2000여 명이었지만 선원들은 부두에서 눈보라와 칼바람에 떨고 있는 1만4000여 명의 피란민을 화물칸과 갑판에 빼곡하게 태웠다. 23일 오전 11시 출항한 배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성탄절인 25일 낮 12시에 경남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혹한 속 사흘간의 항해 과정에서 5명의 새 생명도 태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와 누나도 피란민 대열에 있었다. 빅토리호는 단일 선박으로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배로 2004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미국인들은 이 항해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인은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참전 후 변호사로 일하며 뉴욕주 해군 방위군으로도 복무했다. 생전에 여러 차례 한국을 찾은 그는 자신이 구한 피란민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강국이 된 것이 너무 뿌듯하다”면서 감격해하기도 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피란민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에 오르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죽기 전에 통일된 한반도를 꼭 보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
재향군인회는 그의 공적을 기려 2006년 외국인으론 처음으로 향군대휘장을 수여했고, 정부는 2008년 건국 60주년을 맞아 호국 유공 외국인으로 선정했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17일 유족에게 보낸 조전에서 “한국의 자유와 평화에 헌신한 흥남철수 작전의 영웅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혈맹으로 맺어진 한미동맹이 미래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유엔참전용사 사망 시 예우를 위해 수여하는 추모패를 유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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