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홀로코스트 희생자 시계, 벨기에 농가 정리하다 발견돼
농장주 손자, 시계 뒷면 각인 활용… SNS 수소문 끝에 후손 찾아 전달
손자 “정말 놀랍고 반가우면서도 우크라 전쟁 떠올라 마음 쓰라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이 네덜란드의 유대인에게서 훔친 회중시계가 80년 만에 주인의 손자에게 전달됐다. 시계 주인은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16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와 네덜란드 방송 RTV에 따르면 이 회중시계 뒷면에는 1910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알프러트 오베르스트레이트가 동생인 라우이스의 18번째 생일을 기념해 만들었다는 각인이 새겨져 있다. 시계 선물을 주고받은 이 형제는 32년 뒤인 1942년 나치군에 체포됐고, 둘 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숨을 거뒀다. 이 과정에서 나치군이 라우이스의 시계를 가로챈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약 80년간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이 시계는 벨기에의 한 옥수수 농가에서 발견됐다. 농장주였던 귀스타버 얀선스 씨의 손자들이 몇 달 전 물려받은 농가를 정리하다 시계를 보게 된 것. 농장주의 손자 피터르 얀선스 씨는 “(전쟁 당시) 군인들이 옥수수밭에서 쉬곤 했는데 할아버지가 밭에서 이 시계를 주웠다”며 “할아버지는 시계가 나치군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시계를 숨겨 보관하셨다. 할아버지는 나치를 싫어하셨다”고 말했다.
손자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2대에 걸쳐 간직해 온 이 회중시계를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네덜란드 로테르담 지역의 유대인 유품을 수집하는 역사학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시계 뒷면에 새겨진 오베르스트레이트 형제의 흔적이 유일한 단서였다. 이 학자와 함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수소문한 끝에 형인 알프러트 씨에게 외동딸이 있었고, 그녀가 세 자녀를 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2월 손주 중 한 명인 리하르트 판아메이던 씨와 연락이 닿았다.
극적으로 할아버지의 시계를 전달받은 손자 판아메이던 씨는 “이런 시계가 존재했다는 것조차 몰랐는데 그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시계가 멀쩡하다니 정말 놀랍다. 어머니가 할아버지 유품을 못 보고 돌아가신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2차대전을 겪은 후 극심한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려 전쟁에 관한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없고, 조부모의 삶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고 했다.
“이 시계를 보니 반가우면서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떠올라 마음 한쪽이 쓰라립니다. 폭격을 맞은 도시 지하철 역사에서 소지품을 끌어안고 자는 어린이와 노인들이 생각나네요.”
판아메이던 씨에게 시계를 전해주기 위해 이달 벨기에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찾아온 얀선스 씨는 “할아버지가 바라셨던 대로 시계가 주인을 찾아 기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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