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어령 장관, 죽음 직전까지 쓴 육필원고 ‘눈물 한 방울’ 내일 출간
삶에 애착-먼저 간 딸에 미안함 등 마지막 순간까지 성찰했던 혼 담겨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아름다워”
시간이 지날수록 원고는 악필이 됐다. 2019년 11월 6일 원고는 정돈된 글씨로 썼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색칠도 했다. 이에 비해 2022년 1월 23일 쓴 글은 읽기 힘들 정도로 뒤틀렸다. 검은 펜으로 삐뚤빼뚤 써내려간 글씨에선 육신의 고통이 느껴졌다. 고인은 “죽음이 죽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마지막 원고를 끝맺었다. 30일 출간되는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에세이 ‘눈물 한 방울’(김영사)의 육필 원고엔 죽음의 순간까지 성찰했던 고인의 혼이 담겨 있었다.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장관의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선생은 이른 나이부터 컴퓨터로 글을 썼기 때문에 육필원고가 많지 않다”며 “이 책은 선생이 마지막으로 쓴 육필원고를 그대로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인은 2월 26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참석했다.
“육필원고에는 건강 상태 등 그 사람의 전부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귀중합니다. 선생은 (마우스) 더블 클릭이 안 되고 (컴퓨터) 전자파 때문에 할 수 없이 노트를 썼어요. 노트를 읽다 보면 혼자 저승으로 가야 하는 인간의 외로움이 배어 있죠.”(강 관장)
신간엔 고인이 2019년 10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쓴 수필과 시 110편이 담겨 있다. 고인이 군청색 양장본 대학노트에 쓴 147편의 글 중에 의미 있는 작품을 골라 담았다. 고세규 김영사 대표는 “올 1월 3일 선생이 영인문학관(서울 종로구)으로 불러 ‘원한다면 이 노트를 책으로 만들어보라. 염치 챙기지 말고 작업해 달라’고 당부하셨다”고 말했다.
항암치료를 거부한 고인은 밤이 되면 자신의 약한 마음을 써 내려갔다. 고인은 2021년 7월 30일 글에서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울며 “엄마 나 어떻게 해”라고 말했다고 고백한다. 자신처럼 항암치료를 거부하다 세상을 먼저 떠난 딸 이민아 목사(1959∼2012)를 향해 “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미안하다”고 속삭인다. “살고 싶어서 내 마음은 흔들린다” “한밤에 눈뜨고 죽음과 팔뚝 씨름을 한다”고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고인은 짐승과 달리 인간은 정서적 눈물을 흘릴 수 있기 때문에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위한 눈물은 무력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이라며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썼다. 이승무 교수는 “아버님은 죽음 직전까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강조했다”며 “남겨진 그림을 보니 아버님이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동화책을 쓴 듯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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