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교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제 대학생활은 길 잃음의 연속”
“의미와 무의미의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어느 병원 1인실에서 죽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길“
”여러분은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취업 결혼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느 병원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길 바랍니다. 또 무례와 혐오, 경쟁, 분열, 비교, 나태,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마세요.“
한국계 수학자 최초로 ‘수학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39·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는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제76회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이 같이 당부했다. 2007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와 수학과를 졸업한 허 교수는 이날 후배들 앞에서 축사를 맡았다.
허 교수는 ”제 대학생활은 잘 포장하더라도 길 잃음의 연속이었다“며 ”똑똑하고 성실한 주변 친구들을 보며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회고했다. 또 ”저는 겁이 나서, 아니면 충실하게 지내지 못한 대학생활이 부끄러워 15년 전 이 자리(졸업식)에 오지 못했다“며 ”은사님의 말씀이 듬성듬성해진 성적표 위에서 아직도 저를 쳐다보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허 교수는 후배들을 향해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이라며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준다.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반갑게 맞이하길 바란다“며 후배들의 건투를 기원했다.
허 교수는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란다“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이날 서울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대면 졸업식이 열렸다. 학사 959명과 석사 1041명, 박사 700명 등 총 2700명이 학위를 받았다. 허 교수의 축사를 들은 박사 졸업생 서모 씨(35)는 ”선배님의 응원 덕분에 힘든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다. 졸업생 이모 씨(26)는 ”수학 전공이라 허준이 교수님을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졸업식 때 직접 뵈어 더욱 잊지 못할 졸업식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