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낀 老신사 “빈곤층 위해” 1억 익명 기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0일 03시 00분


하동 화개면사무소 찾은 70대 남성
1억 입금 영수증과 메모글 남겨
“인동 복지기금 명의로 활용했으면”
사자성어 ‘오유지족’ 활용한 서명도

7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18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사무소를 찾아 1억 원을 기탁하며 남긴 메모지. 하동군 제공
7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18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사무소를 찾아 1억 원을 기탁하며 남긴 메모지. 하동군 제공
“멋쟁이 천사가 다녀가셨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노신사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현금 1억 원을 쾌척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19일 경남 하동군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경 하동군 화개면사무소에 청바지와 바바리코트, 중절모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남성이 찾아왔다. 70대로 추정되는 이 남성은 “적은 금액이지만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고, 임영숙 면사무소 주민생활지원 주무관은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이 남성은 약 20분 후 면사무소로 돌아와 임 주무관에게 기부금 입금 영수증과 메모지 한 장을 건넸다. 영수증에는 ‘1억 원’이라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기부액을 100만 원 정도로 생각했다가 금액을 보고 깜짝 놀란 임 주무관이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드리겠다”고 권했지만 남성은 극구 사양했다. 또 “이름이나 신분, 사는 지역 등은 밝힐 수 없으니 묻지 말아 달라”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가 영수증과 함께 남긴 메모지에는 ‘화개면민 사회복지수급 대상자 중 빈곤계층 고령자, 장애인, 질병자, 아동 등의 복지 향상을 위해 인동 복지기금 명의로 활용하기 바란다’는 내용이 정갈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이름은 ‘무명인(이름이 없는 사람)’이라고만 썼다. 이름 뒤에는 ‘오유지족(吾唯知足)’을 한 글자처럼 표현한 서명이 덧붙어 있었다. 오유지족은 ‘스스로 오직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하동군에는 ‘인동’이라는 지명이 있어 남성이 이 지역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임 주무관은 “남성이 화개면 주민으로 보이진 않았다”며 “화개면민을 특정해 기부한 것으로 봐 어떤 식으로든 화개면과 연고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이재만 화개면장은 “이름을 알리지 않은 독지가의 이번 기탁은 각박한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며 “기탁자의 뜻에 따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소중히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1억#익명 기부#하동#화개면#복지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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