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본보 주도 ‘민족성금 기탁’
현충사관리소서 후손 초청행사
개인 31명-단체 21곳에 감사패 전달
“할아버지가 이렇게 뜻깊은 일에 참여하셨다는 걸 가족도 몰랐어요. 가업의 뿌리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충북 괴산군에서 3대째 ‘대성사 양조장’을 운영하는 유기옥 씨(64)는 할아버지가 1931년 6월 동아일보가 주도한 ‘충무공 유적 보존 민족 성금’에 5원을 기탁했다는 걸 10월에 처음 알게 됐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가 올해 현충사 중건 90주년을 맞아 6월부터 당시 충무공 위토(位土·묘소 관리비 조달용 토지)를 지키는 성금을 냈던 선열의 후손 찾기에 나서며 이런 사실이 밝혀졌다.
현충사관리소는 16일 오후 충남 아산시 현충사에서 민족성금 기탁자 후손 초청행사를 열고 유 씨를 포함해 지금까지 찾은 성금 기탁자 후손(개인 31명, 단체 21건)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유 씨는 “할아버지가 민족이 어려울 때 선뜻 기부한 정신을 가풍으로 이어 가겠다”며 “할아버지가 일군 양조장에 감사패를 소중히 진열할 계획”이라고 했다.
충무공 유적 보존 모금운동은 1931년 5월 13일 동아일보가 ‘2000원에 경매당하는 이충무공 묘소 위토’라는 제목의 특종 기사를 쓰며 촉발됐다. 동아일보는 “민족 은인 이충무공의 위토가 경매에 넘어갈 운명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보도는 민족의 정신을 일깨웠다. 동아일보가 주도한 ‘이충무공 유적 보존위원회’에 1932년 6월까지 약 2만 명, 400여 단체가 보낸 1만6021원30전(현재 10억 원 상당)이 모였다. 결국 보존위원회는 충무공 위토를 되찾았고 남은 돈으로는 1932년 충무공 고택 옆에 현충사를 중건했다. 문화재청은 올 8월 당시 성금 편지와 지출장 등 사료 4254점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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