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겔 교수가 전하는 ‘우크라戰 1년’
러군과 싸우는 동생에 옷-양말 보내
“우크라인, ‘무너지면 끝’ 정서 공유”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학과 교수는 러시아가 고국을 침공한 지난해 2월 말 이후 1년 넘게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 지인들과 연락하며 마음 졸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촌동생의 남편, 육촌동생은 현재 최전선에서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다. 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며칠째 답이 없으면 가슴이 내려앉는다.
쉐겔 교수는 14일 경기도의 자택 인근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주민들의 ‘지난 1년’을 담담히 전해줬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연락이 닿을 때마다 보내 달라는 물건이 많다고 한다. 특히 한국산 내복과 양말이 인기가 많다. 따뜻하면서도 땀이 안 차서 좋다는 것이다. 쉐겔 교수는 “재질이 좋아서 3, 4일씩 행군해도 발이 괜찮다고 한다. 군 보급품도 있지만 땀이 잘 차서 오래 행군하면 양말이 피부랑 붙어 벗을 때 많이 아프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 번에 수십 벌씩 보내는데 육촌동생의 소대원들이 고맙다면서 내복 입은 단체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다. 보통 같은 동네 출신들로 부대가 꾸려지기 때문에 쉐겔 교수도 어렸을 적 봤던 동생들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이모한테서 연락이 왔다. 이모는 “소대원들이 전투에서 많이 죽었다. 그래도 네가 보내준 내복을 입고 따뜻하게 갔다”며 울었다.
전장으로 물품을 보내는 방법은 험난하다. 주변국인 폴란드나 체코로 보내면 지인이나 봉사자들이 공항에서 넘겨받아 우크라이나로 배달하는 식이다. 쉐겔 교수가 1년간 물품을 구해서 보내는 데 쓴 2000만 원에서 절반이 수화물 비용이었다.
전장이 아니더라도 우크라인들의 일상 자체가 전쟁이다. 쉐겔 교수는 “외삼촌 부부가 격전지인 헤르손 근처 농장에서 일하시는데 몇백 m 근처에서 미사일이 종종 터진다고 한다”면서 “삼촌도 처음엔 놀라다가 요즘엔 ‘오늘도 왔네’ 하며 무덤덤해졌다”고 전했다. ‘지하실로 내려가 봤자지. 집 무너지면 지하실에서 죽는 거지’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는 이 고통의 역사가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쉐겔 교수는 “이번 전쟁도 러시아가 100년 넘게 반복해온 행동 패턴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하나의 강력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무너지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번에 러시아에 굴복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두려움, 결연함, 절박감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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