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노환으로 별세 뒤늦게 알려져… 日 역대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
일왕제 비판하며 문화훈장 거부… 韓 위안부 문제에 日 사과 요구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 청년들의 정신 상황을 표현하며 일본 문학을 대표한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일본 언론이 13일 보도했다. 향년 88세.
‘설국’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 이후 일본인으로는 두 번째로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고인은 1935년 에히메현에서 태어나 도쿄대 불문과에 다니던 1958년 단편 ‘사육’으로 등단했다. 그해 23세이던 그는 사육으로 최고 권위 신인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다. 이 작품은 패전 이후 일본 사회의 불안감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대표작 ‘만엔 원년의 풋볼’(1967년)은 패전 후 미일안보조약 체결 반대 투쟁,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갈등을 배경으로 일본인이 겪은 정신적 공황을 통해 인간 실존 문제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63년 장애인 아들 히카리를 낳아 기른 경험을 토대로 이듬해 장애인의 출생을 주제로 인권을 유린당한 전후 세대 문제를 파헤친 작품 ‘개인적인 체험’을 펴냈다. 고인은 스페인 언론인 사비 아옌과의 인터뷰에서 “작가로서 나는 아들의 삶을 통해 보는 세상을 묘사했다. 나한테는 히카리가 현실을 여과하는 렌즈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공생(共生)’이라는 작품 세계의 주요 주제를 던져준 것도 아들이었다. 히카리는 현재 유명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스스로를 전전(戰前·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왕제 중심의 초국가주의와 군국주의적 사회 지배구조를 벗어난 ‘전후 민주주의자’라고 칭한 고인은 사회주의 계열 잡지 세카이(世界)에 히로시마를 취재한 경험과 소회를 담은 ‘히로시마 노트’를 연재하며 반핵(反核)과 반전을 주장했다.
‘전후 일본의 양심’ ‘살아 있는 지성’으로 불린 그는 일본 정부가 노벨상 수상자에게 관례적으로 수여하던 문화훈장을 “국가와 관련된 훈장”이라며 거부했다. 국가주의와 일왕제에 비판적이었고 평화헌법 수호 단체 ‘헌법 9조를 지키는 모임’의 중심 구성원이었다.
그는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일본이 아시아인들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일본의 반성을 촉구했다. 또 1995년 동아일보가 후원한 ‘해방 50년과 패전 50년’ 심포지엄을 위해 한국을 찾은 고인은 김지하 시인과의 대담에서 “일본은 패전 후 신생(新生·새로운 삶)을 위해 한국인에게 사죄하고 과거 죄과를 청산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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