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4남매 참변’ 나이지리아 아빠
“멀티탭서 불꽃… 아이 못구해” 자책… “피해 이웃에 미안, 막막하다” 토로
안산시 생계비 지원 등 온정의 손길… 시민단체 등 모금운동도 나서
“사랑하는 아이들과 집, 앞으로의 미래까지 모두 잃었습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빌라 화재로 네 자녀를 잃은 나이지리아인 A 씨(55)는 28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비통한 목소리로 심경을 전했다. A 씨는 전날 오전 3시 28분경 발생한 화재로 11세, 4세 딸과 7세, 6세 아들을 잃었다.
그는 “당시 거실에서 자고 있었는데 멀티탭에서 갑자기 불꽃이 일었다”며 “그 후 스파크가 불길로 번졌다. 연기가 자욱해졌지만 집 구조를 알고 있어 계단을 통해 탈출했다”고 돌이켰다. 또 “주변에 구조를 요청한 뒤 안방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창문을 깨려고 시도했지만 불가능했다”며 울음을 삼켰다.
다섯 자녀와 안방에서 자던 A 씨의 부인 B 씨(41)는 막내딸(2)을 2m 높이 창밖으로 떨어뜨린 후 자신도 몸을 던져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A 씨는 팔과 양발에 화상을 입었고 B 씨는 허리가 골절돼 고려대안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 씨는 “예전에도 멀티탭에서 불꽃이 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바꿨어야 했다”며 자책했다. B 씨 역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내딸은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아동 공동생활가정(그룹홈)에 입소했다.
A 씨는 “우리 때문에 피해를 입은 이웃들에게 미안하다”며 “퇴원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도 했다. A 씨는 한국에서 중고 물품을 모아 나이지리아로 수출하는 일을 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생계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5시경 안산 군자장례식장에는 4남매의 빈소가 차려졌다. 빈소에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는 앳된 사진들이 걸려 조문객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치료 중인 부모 대신 남매들의 외삼촌(43)이 빈소에서 자리를 지켰다. 그는 “한 번에 네 아이를 잃은 건 너무나 슬픈 일”이라며 “부모가 빨리 회복하고 세상을 떠난 네 남매가 천국에 가면 좋겠다”고 했다.
장례식장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대안학교에서 담임교사로 첫째 딸(11)과 둘째 아들(7)을 가르쳤다는 인도인 아누바 씨(37)는 울음 섞인 말투로 “첫째 딸은 조용했지만 똑똑하고 책임감 있는 학생이었다. 둘째 아들은 2년 전 화재 때 크게 다쳤다가 회복했는데 다시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고 했다.
A 씨 가족에 대한 도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장례식장은 무료로 네 자녀 장례를 치러주기로 했다. 안산시는 생계비와 병원 치료비를 긴급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안산 나이지리아 공동체와 사단법인 ‘국경없는 마을’은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