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정전 70년, 참전국 대사 인터뷰]
16개 참전국 중 파병 4번째, 인명피해 3번째로 많아
튀르키예군 한국서 학교 짓고 전쟁고아 640명 돌봐
한국, 튀르키예 대지진 이재민 위한 마을 건설 도와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
“6·25전쟁 때 튀르키예군은 잠시 전투만 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한국인과 진심으로 어우러져 살았다고 생각한다.”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25일 서울 중구 장충동 주한 튀르키예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살리흐 무라트 타메르 대사는 많은 참전국들 중 유일하게 튀르키예만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당시 병력을 보낸 16개 유엔 참전국 중 4번째로 많은 육군 2만1212명을 파병해 △전사 및 사망자 996명 △부상자 1155명 △포로 244명 등 총 2365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참전국 중 3번째로 큰 피해다.
쿠웨이트 대사, 우크라이나 오데사 총영사 등을 지낸 타메르 대사는 지난해 한국에 부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튀르키예는 6·25전쟁 참전국들 중 4번째로 많은 군인들을 파병했고, 3번째로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한국 전쟁을 지원했던 배경과 그 의의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모든 세계가 힘든 상황이었고, 한국 역시 공산주의 독재정치를 하려던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파병이 큰 의의를 갖는 것 같다. 게다가 한국과 튀르키예의 역사는 70~80년 된게 아니라, 15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왔다. 심지어 과거에도 (고구려와 돌궐족이) 전쟁에서 같은 편이었다.”
―여러 참전국들 중에서도 튀르키예만 ‘형제의 나라’라는 별명을 지닌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얼마 전 6·25전쟁 발발 당시 8살이었던 한국인 생존자를 만났는데, 특히 튀르키예군과 미군은 한국인과 교류가 잦았기 때문에 한국 어린이들이 좋아했다고 하더라. 양국이 약 8000km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유사성 때문인지 실제로 튀르키예 군인들은 한국에 잘 적응했다고 한다. 여러 모로 튀르키예 군인들은 6·25전쟁에서 잠시 전투만 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한국인과 진심으로 어우러져 살았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튀르키예 군인들이 경기 수원시에 ‘앙카라 학교’를 짓고, 정전 한참 후인 1971년까지 한국에 머무른 것 역시 이를 보여준다.”
(튀르키예 참전용사들은 전쟁 중 ‘앙카라 학교’를 짓고 10여 년간 한국인 전쟁고아 640여명을 돌봤다.)
―3년간 튀르키예 군은 수많은 주요 전투에서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미 워싱턴포스트(WP)가 “터키군이 전투에서 보여준 무용(武勇)은 말로 설명하기 조차 어렵다”고 전한 기사도 남아 있다. 튀르키예 군이 참여한 주요 전투와 핵심적 기여를 설명해줄 수 있는지?
“김량장리 전투가 대표적이다. 1951년 1월 중공군 점령하고 있던 경기 용인시 김량장리를 튀르키예군이 백병전을 불사해 탈환했다. 여기서 지면 전쟁에서 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중요한 전투였는데, 튀르키예군이 대승을 거둬 계속 후퇴하던 유엔군이 재반격에 나서는 전환점이 됐다.”
(이 전투에서의 전공(戰功)을 인정 받아 튀르키예군은 한국과 미국 정부로부터 부대표창을 받았다. 지난달 국가보훈처는 이 일대를 ‘튀르키예의 길’로 지정했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올해 계획하고 있는 행사가 있는지?
“감사하게도 한국 국가보훈처가 튀르키예 참전용사들을 잊지 않고 매년 초청 사업을 진행해 7월에도 몇 분이 방한하실 예정이다. 대부분 90세를 넘겼지만 한국을 제2의 고향처럼 여겨 방한에 매우 적극적이다. 지난해에도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했는데, 숨진 전우의 비석을 쓸어보시며 수십 년이 지났어도 어제 일처럼 전쟁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하시더라.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 세대는 무슨 기분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밖에 영화 상영제를 열고, 오스만 제국 시절 만들어져 ‘세계 최초의 군악대’로 알려진 튀르키예 군악대 ‘메흐테르’가 부산과 충남 계룡에서 공연을 펼친다. 서울에서도 공연할 수 있도록 시와 논의할 예정이다. 올해는 튀르키예 공화국 설립 100주년이기도 하다. 평소 ‘앙카라 학교’ 출신 한국인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데, 올해 기념행사에 초청해 합창 공연을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지난해 한국 대사로 부임하셨다. 한국에서 지내는 소감이 어떠신가?
“원래도 한국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첫날부터 내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주변에서도 (한국에 부임한 나를) 부러워 했다. 전날에는 7, 8개국 대사들이 모인 행사에서 한국인 관계자가 ‘형제의 나라’라며 나를 유독 반겨주셨다. 이런 일이 종종 있는데 내심 뿌듯하다. 주튀르키예 한국대사도 튀르키예에서 종종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하시더라.(웃음)”
―현재 튀르키예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어떻나?
“튀르키예에는 원래 식당 앞에서 줄 서는 문화가 없는데, 요즘 한식당 앞에만 줄이 늘어선다. 최근 딸 생일파티에서 보니 주요 대화 소재가 ‘블랙핑크’더라. 요즘은 비단 튀르키예뿐 아니라 전세계 어딜 가든 한류 열풍은 비슷할 것 같다.”
―과거 우크라이나 오데사 총영사도 지내셨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해 충격이 크셨을 것 같다.
“부인이 우크라이나인이다. 가족관계를 떠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은 것은 분명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다. 전세계적 기준에서라면 누구나 우크라이나를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 우크라이나에서 자주 갔던 카페나 식당, 친구 집이 모두 붕괴됐다. 오죽하면 어린 아이들조차 날아다니는 ‘드론 소리’만 듣고도, 이 드론이 지금 자신의 동네를 폭격할지, 다른 지역으로 가고있는 지 알아 맞출 수 있을 정도라고 하더라. 슬픈 일이다.”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데.
“한국도 대(對)중국 제재에 동참하라는 압력을 받지만 중국과의 오랜 관계나 중국 시장 등을 고려할 때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나. 러시아의 침공은 분명 잘못됐지만, 튀르키예와 러시아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올 2월 튀르키예 남부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었다. 한국 정부가 재건을 돕기 위해 튀르키예에 공병부대를 파견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현재 복구는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
“아직 건물 재건 단계는 아니고 붕괴된 건물들을 철거하고 있는 상황이다. 추후 재건 단계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한국에 공병부대 파견 요청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그 단계는 아니다. 그래도 피해지역에서도 이번 대선 투표가 이뤄졌을 정도로 상태가 나아졌다. 또한 감사하게도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가 이재민을 위한 컨테이너 마을을 지어주고 있다. 지진 직후 천막 안에서 생활하던 이재민들이 지금은 컨테이너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
(지난달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의 연합시민단체 ‘ASTOP’은 주재국 대사들 중에선 유일하게 한국대사에 지진 재난 지원활동 공로자를 위한 감사패를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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