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 대신 상대 입모양 보고 대화
마스크 착용으로 의사 소통 막혀
강의 못들어 휴학-직장선 업무 차질
“이젠 소통 가능… 운동모임 등 재개”
“마스크를 써야 했을 땐 헬스장 트레이너 입 모양이 안 보여서 대충 알아듣는 척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젠 정확하게 이해하고 동작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제27회 농아인의 날’을 앞둔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헬스장. 김태훈 씨(20) 등 청각장애인 실내운동 모임 소속 20여 명은 트레이너의 입 모양을 주시한 채 동작을 이어가면서 연신 땀을 흘렸다. 트레이너의 설명을 이해한 뒤에는 서로 마주 보고 “할 수 있다!” “가 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1시간 넘게 근력 운동을 소화했다.
청각장애인 바리스타인 김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방역지침이 완화되면서 9개월 만에 다시 운동 모임을 시작했다”며 “마스크 착용으로 의사 소통이 막혀 잃어버렸던 일상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평소 상대방의 입 모양과 표정을 보고 말뜻을 이해하던 청각장애인들은 코로나19 확산 기간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후 사회적 고립에 시달렸다. 김 씨도 “지난해 대학에 입학했지만 마스크를 쓴 상태로는 교수님 강의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어 휴학을 했다. 한때는 자퇴를 고민할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올 초부터 단계적으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청각장애인들의 일상도 회복되고 있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과 요양원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설에서 1일 의무가 해제되면서 청각장애인들은 '보이는 소리'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소리가 보여요”
그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비대면으로 이어오던 청각장애인들의 자조모임도 다시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청각장애인 중 상당수는 수화 대신 보청기 등 보조기구를 착용한 채 상대의 입 모양 등을 보고 대화하는데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선 그럴 수 없다 보니 자조모임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자조모임 ‘바른소리’는 올 4월부터 매달 1회 마스크 없는 실내 모임을 재개했다. 회원 조모 씨(58)는 “비대면 소통만으로는 공감이나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이 부족했다”며 “1일부터 일부 감염 취약 시설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지는 만큼 더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는 청각장애인들은 업무도 지장이 많았다고 한다. 서울의 정보기술(IT) 회사에서 일하는 청각장애인 이모 씨(28)는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상사 및 동료들과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다 보니 잘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았고 실수도 잦았다”며 “이제 마스크를 벗고 상사의 입 모양을 볼 수 있으니 대화가 원활해졌고 업무도 차질 없이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병원서는 여전히 불편”
다만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등에선 아직 마스크를 써야 하는 곳에선 여전히 의사소통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청각장애인 부모 씨(59)는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직원 ‘장애인 전형’ 면접을 보던 중 면접관에게 ‘마스크를 벗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마스크 착용 의무를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다”며 “결국 질문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탈락했다”고 말했다.
의료진의 설명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청각장애인 전모 씨(43)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형병원에 갈 때마다 진료 내용을 녹음한 뒤 글자로 변환하는 이유다. 전 씨는 “녹음기를 켜는 것을 막는 의료진도 있지만 이 방법 외엔 진료 내용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며 “하루 빨리 마스크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청각장애인들은 사소한 표정 변화에 따라 말뜻을 다르게 이해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살짝 찡그리면 ‘귀엽다’는 뜻인데, 좀 더 많이 찡그리면 ‘아깝다’는 뜻이다. 유승민 서울청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 특수교사는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눈으로 해석해야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며 “실내 마스크 전면 해제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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