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노벨 물리학상 클라우저 박사
“CIA 등 지원으로 본격 연구 시작”
정부 “2035년까지 연구 등 3조 투자”
인재 2500명-기업 1200개 육성 계획
“양자암호 기술은 앞으로 국가 안보를 결정할 중요한 기술이다. 국가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할 분야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클라우저 박사(81)는 26일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양자암호 기술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클라우저 박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양자과학기술 국제 행사 ‘퀀텀 코리아 2023’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현재 대다수의 암호 체계는 복잡한 수학 계산을 기반으로 하는 ‘공개키암호방식(RSA)’을 사용한다. 기존 컴퓨터로 RSA 암호를 풀려면 100만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만, 연산 능력이 훨씬 뛰어난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이론적으로 수 초 안에 암호를 풀 수 있다. 클라우저 박사는 “(안보 측면에서) 개발 필요성을 직감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 등이 자금을 지원하며 본격적인 양자 연구가 시작됐다”고 했다.
클라우저 박사는 1972년 양자 암호의 기반이 되는 ‘양자얽힘’ 현상을 실험적으로 처음 증명한 인물이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두 명의 다른 과학자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양자얽힘은 두 개의 양자가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당시 과학계는 양자역학을 완전하지 못한 학문이라고 바라보던 ‘아인슈타인 학파’와 양자역학을 지지한 ‘닐스 보어 학파’로 나뉘어 있었다. 클라우저 박사의 연구는 닐스 보어 학파의 승리를 결정지었다. 클라우저 박사는 “아인슈타인은 내 ‘히어로’였기 때문에 내심 그가 승리하길 바랐지만 내 실험으로 그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아인슈타인은) 워낙 훌륭한 과학자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나에게 이 실험은 정말 미친 짓이라고 말했고, 내 커리어를 망칠 것이라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클라우저 박사가 증명한 양자얽힘 현상은 양자 산업 전반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2040년이면 양자 산업이 100조 원대 시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클라우저 박사는 “정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초과학에 대한 국가의 꾸준한 투자와 진실을 밝히겠다는 젊은 과학자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7일 DDP에서 ‘대한민국 양자과학기술 전략’을 발표하며 양자 기술 분야에 2035년까지 민간 기업과 함께 3조 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2조4000억 원의 예산을 활용해 양자 기술 기초 연구와 산업화에 투자하고, 민간 기업도 올해부터 2027년까지 6000억 원을 투자한다. 양자 분야 핵심 인력은 지난해 기준 384명에서 2035년 2500명 규모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양자 기술을 공급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의 수도 기존 80곳에서 앞으로 1200여 곳까지 늘릴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DDP에서 클라우저 박사를 포함한 양자 분야 주요 석학 및 연구자들과 대담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세계 각국의 양자 전문가 등이 함께 연구, 개발하고 성과를 공유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디지털·물리 공간인 ‘퀀텀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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