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일본 도쿄 미나토(港)구에 있는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 민단(민단)’ 사무실엔 이렇게 적힌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노란 종이 봉투 안에는 직접 쓴 편지와 1만 엔 권(8만9000원) 한 장이 들어있었다.
우리 정부 산하 재단(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이 3월 발표된 이후, 재일 동포가 아닌 일본인이 기부한 건 처음이다. 앞서 재일 경제인 십수명이 기부금을 낸 적은 있었지만 일본인 개인의 기부는 없었다.
일본인 A 씨는 우선 ‘제3자 변제안’을 언급하며 “일본이 (배상에)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것을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편지에는 자신의 이름과 집주소도 적었다.
A 씨는 또 “윤석열 대통령의 크나큰 노력과 관용으로 일한(한일) 관계가 환하게 밝아졌다”면서도 “안타까운 건 일본 정부의 대응”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일본은 ‘과거 전쟁을 일으켜 침략한 각 나라 국민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비참함을 안겨줬고, 이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는 메시지를 내놔야 한다”며 “역사를 배우는 의미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 중 일부가 ‘제3자 변제’를 거부하는 상황과 관련해선 A 씨는 “지금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부 정도인데 (피해자들에게) 실례라면 사과드린다”고 적었다. 이어 “중요한 건 상호 이해를 위한 끊임 없는 노력”이라며 “저도 한국분들의 생각과 사회구조, 생활, 역사와 전통에 대해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런 마음을 표현하듯 A 씨는 편지지 아래쪽엔 한복을 입은 여성과 이조 백자 그림을 직접 그려넣었다.
A 씨는 재일 동포가 아닌 일본 시민인 것으로 민단은 추정하고 있다. 민단은 A 씨의 주소로 감사편지를 발송했다고 전했다. 민단의 조연서 부국장은 “단체에 계좌번호를 묻지 않고 우체국에서 현금을 봉투에 넣어 부친 점을 감안했을 때 연세가 있는 일본인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올 3월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물컵의 반’이 찼다고 했는데, (편지를 받았을 때) 나머지 반을 채우기 위한 작은 손길들이 모이는 것 같아 따뜻함을 느꼈다”고도 했다.
민단 여건이 단장은 최근 국내로 입국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A 씨의 편지와 1만엔이 든 봉투를 전달했다. 재단은 공식 기부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 돈을 징용 피해자들을 위한 배상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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