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 시리즈 등 현대미술 한 획 그어
뉴욕현대미술관 등에 작품 소장돼
입원 뒤에도 “캔버스 배접 해두라”
추상미술 ‘단색화’를 이끌며 한국 현대 미술에 획을 그은 박서보(본명 박재홍) 화백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올해 2월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뒤에도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며 작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박서보재단(전 기지재단)의 이유진 상임이사는 “박 화백은 건강 악화로 이달 12일 입원한 뒤에도 ‘작업실에 쌓아 둔 캔버스에 배접(褙接)을 해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56년 당시 작가들의 등용문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반기를 드는 ‘반(反)국전 선언’을 하고 독립 전시를 열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유럽의 전후 추상미술인 앵포르멜 회화의 영향을 받은 연작 ‘원형질’, ‘유전질’을 발표하면서 추상 회화를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1975년 일본 도쿄화랑의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 전’을 전후로 단색조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 무렵 선을 긋는 행위를 되풀이한 대표작인 ‘묘법(描法·Ecriture)’ 시리즈도 시작해 재료와 색채를 바꾸며 40여 년간 작업을 이어갔다.
박 화백이 이끌었던 단색화는 2010년대 이후 국내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대표적인 장르가 됐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한국의 단색화를 세계 미술계에 각인하는 작업은 박 화백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일본 도쿄도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고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장년에도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고 작업했던 박 화백은 삶 자체가 기(氣)였다”며 “장강(長江)과도 같은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1962∼1997년 홍익대 회화과 교수로 일했고, 1986∼1990년 미술대 학장을 지냈다. ‘홍대 미대 사단의 대부’로도 불렸다. 1970∼1977년 한국미술협회(미협) 부이사장, 1977∼1980년 미협 이사장을 지내며 미술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지난해 12월 박서보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제주도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건립되고 있다.
유족으로 부인 윤명숙 씨, 아들 승조 전 강원대 교수, 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 딸 승숙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7일 오전 7시. 02-2072-0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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