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 시간) 영국 옥스퍼드셔주 옥스퍼드대에 있는 허트퍼드 칼리지의 한 강의실. 옥스퍼드대 아시아 및 중동학부 연구위원인 커티스 윈터 영화감독이 올 4월부터 제작 중인 해녀 관련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가 전통을 떠나 도시로 향하고 있는데, 해녀들은 수 세기에 걸쳐 사회적 소외를 견뎌내며 제주의 핵심 가치가 됐다”고 평가했다.
‘한류 4.0, 그 새로운 물결 그리고 미래를 위하여’를 주제로 열린 제1회 고려대-옥스퍼드대 포럼에선 제주 해녀 등 한국 전통 문화가 깊이 있게 조명됐다. K팝이나 K드라마 같은 현대 문화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 문화로 한류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고려대와 옥스퍼드대가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한 이번 포럼에는 윈터 감독은 물론 옥스퍼드대 이언 카이어 미대 교수, 조지은 아시아 및 중동학부 교수와 고려대 김동원 총장 등 10명이 한류의 가치와 미래를 논했다. 이 포럼은 현대자동차가 재정 지원을 했다.
● 옥스퍼드대 교수 “조선시대 화가에게 영감”
윈터 감독의 해녀 다큐멘터리는 옥스퍼드대 조 교수가 영국 리버흄재단에서 5억여 원을 지원받아 시작됐다. 조 교수와 윈터 감독, 신우봉 제주대 교수팀은 제주에서 해녀의 삶과 고뇌를 170시간에 걸쳐 담아냈다. 이 다큐는 2025년 상영할 예정이다. 조 교수는 “이 다큐멘터리는 한류의 물결이 한국 전통문화 구석구석까지 일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올해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도 제주의 이야기가 한국을 넘어 세계에 울림을 줬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산수화의 매력도 주목받았다. 카이어 교수는 조선시대 전기 사대부인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1488∼1545)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16세기 산수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양팽손의 그림 여백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추상적 표현주의와 현대 미술의 미니멀리즘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카이어 교수는 최근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등에서 연 전시에서 이 영감을 반영해 단색과 여백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자본에 종속될 우려도 제기됐다. 박지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넷플릭스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의 저작권을 독점하고 있다”며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 제작사가 받은 순수익은 전체 제작비의 10% 정도인 200만 달러(약 26억 원)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 “한류, 대학 글로벌화로 이어가야”
한류가 지속 가능하려면 한국 대학의 글로벌화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려대와 옥스퍼드대처럼 한국 대학들이 해외 명문대와 교류해 외국의 한국 전문가를 양성하면서 국내 대학의 경쟁력도 키워야 한다는 취지다. 김 총장은 “한 대학이 명문대로 남는 시대는 지났다. 대학의 해외 네트워크가 경쟁력”이라며 글로벌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려대는 16일 영국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학술교류협정을 맺었다. UCL은 올해 영국의 세계 대학평가 기관인 QS평가에서 세계 9위를 차지한 연구중심 공립대다. 1826년 설립 이래 3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두 대학은 매년 각각 3만 파운드(약 4900만 원)씩 연구 기금을 조성해 공동 연구와 신진 연구 인력 육성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양교 간 온·오프라인 회의를 정례화하고, 공동세미나 및 교원 교류 등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고려대는 옥스퍼드대 울프슨 칼리지와는 첨단과학과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 협력과 학생 교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추진하기로 했다. 허트퍼드 칼리지, 브레이스노즈 칼리지와는 MOU를 검토하기로 했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영국의 세계적인 명문 대학들과의 교류를 통해 고려대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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