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엔 타인 조혈모세포 이식해 치료
본인 세포 이용 면역 거부반응 없어
비용 29억-극소수 병원만 가능 한계
“유전질환 치료, 다양한 연구 나설듯”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치료제가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 승인을 받았다. 유전자가위는 비정상적 유전자를 잘라내거나 편집할 수 있어 유전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12세 이상의 중증 겸상(鎌狀·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 환자에게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 ‘카스거비’를 승인했다고 8일(현지 시간) 밝혔다. 카스거비는 앞서 지난달 16일 영국에서 승인을 받은 바 있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은 사람의 몸에 산소를 전달하는 적혈구 세포가 제대로 일하지 못해 생기는 질환이다. 적혈구가 산소 전달을 하지 못하면 심각한 통증이나 뇌중풍(뇌졸중), 장기부전 등을 초래한다. 원인은 적혈구 내부의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유전자에 오류가 생겼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원형이어야 할 적혈구가 낫이나 초승달 모양으로 변해 ‘겸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FDA에 따르면 미국에서 10만여 명이 이 병을 앓고 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가장 흔하게 발생한다.
이 병을 치료하려면 지금까지는 혈액을 만들어내는 정상인의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아야 했다. 다른 사람의 혈액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해야만 했다. 반면 카스거비는 환자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이용한다. 우선 환자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추출한 뒤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문제의 유전자를 잘라낸다. 이를 다시 환자 자신에게 이식하는 방식이다. 한 번에 영구적 치료가 가능하고, 본인 세포를 이용하니 면역 거부 반응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치료 비용이 220만 달러(약 29억 원)에 달한다. 또 치료 가능 의료기관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국에서의 승인으로 유전자가위 치료제에 대한 글로벌 연구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툴젠, 진코어 등 국내 기업들도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를 연구 중이다.
김용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진코어 대표)은 “유전자가위 기술은 그동안 실험실에서 생물의 유전자 변형 등에 도구적으로만 사용됐다”며 “이번 승인으로 다양한 유전 질환에 대해서 치료적인 물질로 사용되는 방향 전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세포에서 원하는 부위의 유전자(DNA)를 잘라내 교정하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3세대에 해당한다. 기술 개발자인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 감염생물학연구소 교수와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는 202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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