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 보증금까지 다 주고 떠난 ‘김밥 할머니’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4일 03시 00분


전 재산 7억 기부 박춘자씨 별세
열살 때부터 김밥 팔아 생계 꾸려
장애인 11명 자식처럼 키우기도
“나누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 없어”

김밥 장사로 모은 전 재산 7억여 원을 기부하고 11일 세상을 떠난 박춘자 할머니. 고인은 생전에 “나누면 기분이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김밥 장사로 모은 전 재산 7억여 원을 기부하고 11일 세상을 떠난 박춘자 할머니. 고인은 생전에 “나누면 기분이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50여 년 동안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 7억 원 이상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해 ‘김밥 할머니’로 불렸던 박춘자 할머니가 11일 별세했다. 박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남은 집 보증금 5000만 원도 모두 기부하고 떠났다. 향년 95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따르면 박 할머니는 어렸을 때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 열 살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당시 경성역(현 서울역) 앞에서 김밥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경기 성남시로 이사 간 뒤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에게 김밥을 팔며 생계를 꾸렸다.

365일 하루도 장사를 쉬지 않았던 박 할머니는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생각을 40여 년 전 성당을 다니면서 실천에 옮겼다. 신부가 데려온 발달장애인 아이들을 직접 키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후 장애인 11명이 머물 집을 마련하고 아흔 넘어 기력이 다할 때까지 친자식처럼 돌봤다. 젊은 시절 아이를 낳지 못해 이혼당한 아픔이 있던 박 할머니에겐 늦게 얻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박 할머니는 힘들게 모은 전 재산을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했다. 2008년 TV에서 초록우산의 후원 사업을 알게 된 후 “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며 3억 원을 기부했다. 2011년에는 해외 아동 지원에 써 달라며 1000만 원을 기부했다. 같은 해 장애인을 위한 거주 공간을 지어 달라며 성남 작은예수의집에 3억 원을 기부했다.

2019년에는 ‘죽기 전 조금이라도 더 나눠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초록우산에 매월 정기후원을 신청했다. 그해 건강이 악화된 고인은 본인이 사망하면 집 전세 보증금 5000만 원을 기부하겠다는 ‘유산기부’ 서약도 맺었다.

이 같은 선행이 알려지면서 2021년엔 LG 의인상을 받았는데, 이 상금 5000만 원도 모두 기부했다고 한다. 같은 해 12월 모범 기부자로 청와대에 초청된 박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의 눈을 피해 김밥을 팔던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김밥 장사로) 돈이 생겨 먹을 걸 사 먹었는데 너무나 행복했다. 그게 너무 좋아서 남한테도 주고 싶었다. 나누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고인의 장례는 성남시 소망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유해는 13일 오전 발인식 후 경기 안성시 추모공원 납골당에 안치됐다.

#보증금#김밥#기부#김밥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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