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같은 평상심, 60년 수도생활이 준 선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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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에세이 ‘소중한 보물들’
법정 스님-초등생과의 일화 등 담아
“숨쉬고, 신발 신는 것 자체가 희망
20대로 돌아간다면 염색 해보고파”

이해인 수녀가 1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쓴 신간 ‘소중한 보물들’의 한 구절을 읽고 있다. 뉴시스
이해인 수녀가 1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쓴 신간 ‘소중한 보물들’의 한 구절을 읽고 있다. 뉴시스

“늘 푸른 소나무 같은 평상심이야말로 지난 60년의 수도 생활이 제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인 수녀(79)는 수녀회 입회 60년을 맞아 18일 펴낸 에세이 ‘소중한 보물들’(김영사) 기자간담회에서 “중심이 잘 잡히면 바람이 불어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날 그는 16년의 고된 항암 투병 생활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간담회 내내 소녀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신간에서 자신을 ‘기쁨 발견 연구원’이라고 일컬은 이유를 알 법했다.

“저도 제가 감상적인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투병을 하니까 그렇게 씩씩하고 명랑할 수가 없더라고요. 이렇게 숨쉬고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구나, 신발을 신는 것 자체가 희망이구나 생각하며 삽니다.”

신간은 수녀 생활을 시작하면서 써 내려간 시, 단상 등을 모은 184권의 노트를 기반으로 쓰였다. 김수환 추기경의 편지부터 법정 스님과의 일화, 초등학생과의 사연 등 60년의 수도 생활로 얻은 ‘소중한 보물들’이 펼쳐진다.

“(수도회가 있는) 부산 광안리의 산에는 솔방울이, 바다엔 조개껍데기가 있지요. 이런 사물을 아끼고 좋아합니다. 좋은 글귀나 성경 구절을 모아 조가비에 적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수도자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는 “수녀가 되지 않았다면 방송국 PD 같은 일을 했을 것 같다”며 “만약 20대로 돌아간다면 머리에 물들이는 것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제 백발을 보면서 ‘시간의 선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생을 더 행복하고 명랑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같은 시대를 사는 이들이 소중히 여겼으면 하는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조금만 더 남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겪은 6·25전쟁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부산으로 피란을 가서 조그만 셋방에 살았는데 집주인이 남이 아니라 정말 친척같이 대해주셨던 게 지금도 기억나요. 내 가족도 소중하지만 한 시대를 함께 사는 우리 모두를 서로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 그런 영성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이해인 수녀#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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