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82세… 디스크 수술 후유증 투병
“노래는 숙성돼야” 40세에 첫 히트곡
‘봉선화 연정’ 등 남긴 트로트 4대천왕
가요계 “늘 큰형님 같던 분” 애도
24세에 서울로 올라와 첫 음반을 냈지만 시원치 않았다. 데뷔 5년 만에 짐 싸서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을 외면할 순 없었다. 이후로도 무명 생활은 길었다. 하지만 그는 견뎠다. “노래는 숙성이 돼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돌아간다.” 그의 신조였다.
‘손대면 톡 하고…’로 시작하는 ‘봉선화 연정’으로 1989년 ‘KBS 가요대상’ 대상을 받으며 가요계 정상에 섰을 때, 그의 나이 47세였다. 대기만성형 가수였다. “60세가 넘어 신곡을 검토할 때도 ‘이 곡은 한 5, 6년 후에 내자’고 할 정도였다. 다들 빨리빨리를 얘기할 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작곡가 정원수 씨)
특유의 구성진 꺾기 창법과 부드러운 보이스로 1980,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가수 현철(본명 강상수)이 15일 밤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4년 전 디스크 수술을 받을 때 신경이 손상돼 건강이 악화됐고, 최근 폐렴까지 겹쳐 두 달간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었다고 한다. 아끼던 손주를 비롯해 가족들이 모인 마지막 배웅 길에 가족은 고인이 가장 아끼던 곡인 ‘내 마음 별과 같이’를 틀어서 귀 가까이에 대고 들려줬다고 한다. ‘내 마음 별과 같이/저 하늘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리.’
현철의 첫 히트곡은 데뷔 14년 만에 나왔다. 셋방살이를 전전하던 그가 고생하던 아내를 떠올리며 만든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1982년)으로 이름을 알린 것. 그의 나이 40세 때였다. 이어 ‘사랑은 나비인가 봐’, ‘내 마음 별과 같이’에 이어 1988년 발표한 ‘봉선화 연정’으로 그는 ‘국민 트로트 가수’ 반열에 오른다. 송대관 설운도 태진아와 함께 ‘4대 천왕’으로 불리며 트로트 전성기를 이끌었다.
유명인이 된 후에도 그는 소탈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후배들 술 사주고, 밥 사주는 큰형이었다. 동네에서 장사하는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안부를 묻고, 전철 등 대중교통도 자주 이용했다. 가수 태진아 씨는 “현철 선배는 무엇보다도 정이 많았다. 내가 상을 타면 내 손 잡고 울어줬고 나도 그렇게 했다”며 “대한민국 트로트계 최고의 가수인데 가요계의 큰 별이 지셔서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고인은 선행 연예인으로 국무총리 표창,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대통령 표창), 옥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 배우자 송애경 씨, 아들 복동 씨, 딸 정숙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8일 오전 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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