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경찰 정년퇴직한 김윤석씨
2000년부터 쪽방촌 주민과 인연
식료품 전달하다 무료 급식소 운영
“하루 800명 식사, 비용충당 힘들어”
“쪽방촌과의 질긴 인연이 어느새 23년째네요. 그런데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무료 급식소. 간이식탁 10여 개 사이로 자장면을 나르던 김윤석 씨(62)는 땀범벅이었다. 그사이 점심을 먹으러 오는 쪽방촌 주민과 노인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급식소 한쪽에서는 봉사자들이 분주히 수타면을 삶고 있었다. 김 씨는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 노인들에게 송편과 종합영양제가 들어 있는 추석 선물 보따리를 건넸다.
20년 넘게 영등포 쪽방촌에서 봉사 활동을 해 온 김 씨는 전직 형사다. 그는 올해 6월 33년간의 형사 생활을 마치고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정년 퇴직했다. 2002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웃 돕기에 중독된 경사’로 소개된 그는 22년이 지나서도 같은 자리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김 씨와 쪽방촌의 인연은 2000년에 시작됐다. 김 씨는 당시 영등포경찰서로 발령받은 뒤 관할 지역에 있는 쪽방촌을 알게 됐다. 종종 경찰서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쪽방촌 주민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붙들려 오기도 했다. 차츰 마음이 쓰인 김 씨는 처음엔 쪽방촌 노인 12명에게 매주 식료품 등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후 활동을 넓혔고 나중에는 ‘쪽방촌 도우미봉사회’ 모임을 결성했다. 2016년에는 아예 컨테이너를 구해다가 무료 급식소를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은 한 푼도 없이 기부금과 사비로만 비용을 충당했다.
김 씨는 기자와 만나 “질긴 인연도 올해가 마지막일 듯하다”고 말했다. 물가가 오르면서 비용은 늘어나는데 기부금은 점점 줄고, 반면 급식소를 찾는 사람은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에만 800여 명이 급식소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작년보다 200여 명 늘었다. 현재 김 씨와 급식소 봉사를 함께하는 회원은 20여 명이다. 더욱이 김 씨가 퇴직해서 고정 수입이 없기 때문에 비용을 감당하기 더욱 힘들어졌다.
급식소가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쪽방촌 주민들은 안타까워했다. 이날 자장면을 먹은 김모 씨(69)는 “가족도 없어 외로운데 이곳마저 사라지면 내년 추석은 더 암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