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대여받은 한복으로 멋을 낸 마누엘 알폰소 킴 씨(59)가 산비탈의 계단식 집과 감천항을 내려다보며 스페인어로 아름답다는 의미의 “보니토(Bonito)”를 연발했다. 과거 이곳이 한국전쟁을 겪은 피란민들의 힘겨운 삶의 터전이었다는 역사를 알게 된 그는 “멕시코로 이주한 할아버지가 어려움을 겪은 조국에 돈을 보내려고 애를 썼으나 자신도 어려운 상황이라 실행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아쉬워했다.
킴 씨는 ‘애니깽’(에네켄·Henequen·용설란의 일종)의 후손이다. 1905년 인천 제물포에서 출발해 멕시코 메리다로 이주한 그의 할아버지는 에네켄 농장에서 일했다. 배를 타고 한국을 떠나온 1000명 넘는 이들이 뜨거운 이역만리 땅에서 하루 12시간 넘는 노동에 시달렸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킴 씨는 21일 아들과 손녀 등 10명의 가족과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다음 달 5일까지 경주와 전주, 서울 등을 여행할 예정이다. 이들은 해운대 해변열차와 송도해상케이블카를 타고 본 초고층 빌딩과 해안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킴 씨 딸의 남자친구인 카를로스 씨(37)는 “광안리 드론쇼를 잊지 못할 것”이라며 “멕시코에는 드론을 활용한 이벤트가 없다. 한국의 발전된 과학기술이 놀랍다”고 했다.
현재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에는 애니깽 3∼5세대 후손 수천 명이 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선조의 뿌리는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매년 삼일절과 광복절에 모여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르며 한국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킴 씨의 아들 메이 알폰소 씨(33)는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점은 언제나 자부심의 원천”이라며 “케이팝과 전자산업 등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한국을 보며 내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늘 자랑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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