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북한을 방문하고 일시 귀국한 세계교회협의회(WCC)아시아
국장 朴庚緖박사의 북한방문기를 단독게재한다. 무장간첩침투사건직후 북한을 방문
한 그의 눈을 통해 북한의 최근 상황과 식량사정 등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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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들도 북한잠수함의 남한침투사건을 알고 있었다. 방문후 며칠이 지난 뒤
나에게 배정된 승용차 운전사에게 이 얘기를 꺼냈더니 처음에는 말하지 않으려고 하
다가 나중에 짤막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들은 북한중앙통신이 선전한대로 「훈련중인
북한 잠수함이 기관고장을 일으켜 표류중 남쪽으로 떠내려갔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식량사정을
논의하기 위해 큰물(수재)대책위원회의 정무원관리들과 몇차례 회의를 가졌지만 그
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변명
을 하든 어떤식으로든 얘기를 꺼냈을텐데 그런적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어서인지 사회전반적으로 긴장이 고조돼 있었
다.
17일 저녁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타도제국주의동맹결성 70주년기념식」에
참가한 우리 대표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행사가 잠수함사건과 관련없는 연례행
사였지만 북한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잘 보여주는 행사였다. 우리들은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북한 사람들과 자유와 시장경제의 환경에서 살아온 남한사람들이 독일처럼
하나의 체제로 통합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이번 방문에서 우리 대표단이 거둔 가장 큰 수확은 외부세계에서 지원한 쌀 등 식
량이 수재민들에게 잘 배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점이었다.
방문 닷새째인 16일 우리 대표단은 세계식량기구(WFP) 평양사무소직원들과 함께
평남 안주시 풍년동과 연풍동의 배급소를 차례로 방문, 식량배급방법과 인원 등을
점검했다. 또 근처의 몇가정을 불시에 방문해 정말로 쌀을 배급받고 있는지 살펴보
았다. 그래서 식량은 수재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풍년배급소에서 40대중반의 한 아주머니가 남한에서 온 쌀(쌀포대에 영문으
로 Republic Of Korea라고 찍혀 있음)을 배급받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아주머니
이 쌀이 어디서 오는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 아주머니는 『남쪽에서 온
것』이라며 『잘 먹고 있어요. 앞으로도 더 원조해주면 고맙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주민들이 영어를 알아서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얘기해주어서인지 이 쌀들이 남한과
미국 일본 등에서 온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대표단은 도로사정이 좋지않아 다른 지역을 방문할 수 없었다. 평양∼
원산, 평양∼개성, 평양∼평북 향산 등을 잇는 고속도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도
로들이 해방직후의 자갈길 그대로여서 자동차로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묘향산 근처의 향산군 태평리를 방문, 지난 7월의 수재상황을 살폈다. 무너진 둑,
떠내려간 집과 축사, 황폐화된 옥수수밭과 채소밭 등은 올해에도 북한이 심각한 수
재를 겪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때 1백16명이 물에 떠내려갔다고 함께 간 한 북한관리
가 설명했다. 황해북도 사리원을 방문해서는 지난해 수재때 무너진 둑과 황폐화된
밭이 그대로 방치돼있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방문기간중 평남북 농촌의 들녘을 둘러볼 기회가 많았는데 논에 쌓아놓은 낟가리
가 왜소해보여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알곡이 65%가량밖에 여물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북한주민들은 먹을게 없어 그나마 내년 1월부터 먹어야할 이 추수식량을 벌써 빻아
서 먹기 시작했다. 내년 4월이후 이 식량마저 떨어지면 내년추수기인 10월까지 6개
월동안 북한은 가장 큰 식량난으로 시련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안주시 배급소곡물
창고에는 쌀이 70∼80가마밖에 없었다.
북한은 올 한햇동안 3백만t의 쌀을 수확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북한주민들을
먹여살리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확량이다. 내년에도 최소한 80만t은 더 있어야 어려
움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WCC도 5천∼1만t의 식량을 추가지원할 예정이
며 다음번 식량을 내년 3월경 보내기로 했다. 현재 캐나다 미국 독일의 개신교와 북
유럽국가 및 교회들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고 있다.〈정리〓尹正國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