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전대통령이 우리 헌정을 유린한 12.12와 5.18에 대한 법정증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실로 유감스런 일이다. 증언거부에 대해 재판부가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자 최씨측은 대법원 항고를 검토중이라고 한다.
최씨는 대통령직을 물러났지만 자신은 일반시민과 다른 특권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하는듯 느껴져 우선 위화감을 준다. 우리나라 어느 법규에도 전직대통령의 특권을 규정하고 있는 조문은 없다. 다만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물질적 혜택과 함께 체면유지를 위한 사무실 제공, 비서관 채용, 가료(加療) 등에 관한 규정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는 퇴임 후 전직대통령이 증언을 해야 한다면 대통령의 국가경영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면서 법정출석 선례를 만들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클린턴대통령도 비디오를 통해 자신의 스캔들에 관해 증언한 바 있다. 싱가포르의 이광요총리 역시 지난 89년 간편복 차림으로 법정에 나와 증언했다. 민주국가에서 전직대통령의 법정증언은 관례화돼 있고 함축적인 의미도 크다. 재임중의 일에 대해 법정증언을 해야 한다면 국정행위를 보다 적법하고 신중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전대통령은 12.12 당시 신군부측의 정승화계엄사령관 연행조사 요청에 대해 국방장관 결재가 없다며 재가를 보류했다. 무릇 비상시에는 법의 집행에서도 평시와 달리 복잡한 절차를 생략한 채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의사와 결단에 따라 가부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최전대통령은 국방장관의 결재가 있고서야 사후 재가했다.
1심재판부는 12.12를 군사반란으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최전대통령은 군사반란에 면죄부를 준 셈이 아닌가. 또한 최씨는 12.12 후 신군부에 의한 5.17 비상계엄 확대와 사실상 통치기구가 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설치경위 그리고 신군부측의 노골적인 퇴진압력이 있었는지 등에 관해 소상히 증언해야 한다.
80년 「서울의 봄」 당시 환갑을 앞둔 최대통령은 수즉다욕(壽則多辱·오래 살면 욕되는 일도 많다)이라며 『욕된 생애를 살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세인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다.
다시는 이 땅에서 헌정파괴 행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최전대통령의 법정증언은 필요하다. 이제는 명철보신(明哲保身·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자신을 잘 보전함)보다 투철한 역사의식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강 성 재(국회의원·서울성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