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眞敬기자」 에르네스토 세디요(44) 멕시코대통령은 다음달 1일로 집권 2주년을 맞는다.
왕처럼 군림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퇴임후에도 여생을 편안하게 즐기던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세디요대통령은 무척이나 힘든 2년을 보냈다. 그만큼 세디요는 경제에서부터 반군문제까지 멕시코에 산적한 난제를 몸으로 부닥치며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94년12월 취임할 때만해도 국민들이 그에게 건 기대는 작지 않았다. 그런 기대는 세디요의 입지전적 경력에 기댄바 크다. 52년 미국과의 접경도시인 멕시칼리에서 전기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한때 구두닦이로 생활전선에 나설 정도로 무척 가난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가난속에서도 미국의 명문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따냈다.
세디요가 94년 대통령선거에 나선 것은 한마디로 생각지 못한 행운이었다.집권 제도혁명당(PRI)의 대통령후보인 루이스 콜로시오가 유세중 암살되자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그가 후보로 지명됐고 빈부격차에 시달려온 국민들은 「구두닦이 출신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
그러나 그의 취임시기는 「페소화 급락」이라는 멕시코위기와 일치한다. 전문가들은 큰폭의 경상수지적자와 지나친 대외의존, 그리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가입을 페소화 급락의 요인으로 꼽았다.
물론 당시 경제위기의 책임은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대통령에게 집중됐다. 공직생활 20여년동안 선출직을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기술관료출신으로 한계도 있었지만 세디요는 전임대통령의 망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점진적인 정치개혁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경제안정을 통한 사회불안 해소를 최대 정책목표로 삼았다. 특히 경쟁력있는 페소화를 이용,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에 힘썼다. 부분적으로 수출증대 덕분에 멕시코의 경제는 극심한 불황에서 벗어나 서서히 회복돼 가고 있다.
그러나 멕시코의 무역이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해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멕시코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역내국가와의 연 교역량 7백60억달러중 7백억달러가 미국과의 교역량이다.
그는 또 정치개혁을 추진, 주요 3대정당이 참석한 개혁협상을 중심으로 지방행정부와 입법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보다 균형잡힌 새 정치구조의 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또 심각한 빈부격차의 해소를 주장하며 속속 생겨나고 있는 사파티스타민족해방전선과 인민혁명군 등 반군들과의 평화협상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