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일가]뉴욕 최영도씨 기자회견…지난달 말 탈북상의

  • 입력 1996년 12월 10일 20시 24분


북한을 탈출한 金慶鎬(김경호)씨 가족들은 계획이 실패할 경우 모두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사전에 극약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부당국과는 지난달 말부터 이들의 탈북을 위해 협조를 계속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사위 김씨 가족의 북한탈출을 계획하고 지원해 온 뉴욕 플러싱거주 崔暎道(최영도·79)씨는 9일 오후(현지시간) 뉴욕의 한 한국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자청, 이같은 사실을 털어 놓았다. 최씨는 『딸가족이 무사히 서울로 오기까지 얼마나 가슴을 조였는지 모른다』고 말문을 연뒤 『그동안 도와주신 정부당국과 국민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을 덧붙였다. 다음은 최씨와의 일문일답 내용. ―우선 본인 소개부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에서 태어났고 광복 다음해인 46년6월 월남했다. 북한에서 치과의사 면허를 땄고 월남후 당시 보건사회부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받아 한국에서도 치과의사로 활동했었다. 자녀는 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1남6녀가 아니고 1남4녀다』 ―딸 현실씨는 어떻게 찾았는가. 『4년전 미국안에서 북한과 잘 통하는 사람들에게 부탁해 거처를 알아냈다. 그후 50여차례에 걸쳐 서신연락을 해 왔고 한번에 5백달러정도씩 계속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그러나 金日成(김일성)이 죽은 후로는 북한경제가 어려워져 그런지 그 돈이 딸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딸대신 며느리를 부인과 함께 중국에 보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당초 딸 현희를 함께 가도록 했었는데 결혼후 남편의 성을 따서 김현희가 되니까 중국대사관에서 대한항공 폭파범과 이름이 같다고 비자를 주지 않아 결국 며느리를 딸려 보내게 된 것이다』 ―탈출과정이 얼마나 어려웠는가. 또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가. 『물론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목숨을 건 탈출치고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도와준 사람은 사정상 밝힐 수 없다. 그 사람들 신변안전도 문제이고 앞으로 북한을 나오는 사람들을 그들이 또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금은 어느 정도 들어 갔는가. 『자금을 밝히는 것도 어렵다. 그냥 몇만달러 들어간 것으로만 알아달라』 ―한국정부와는 사전에 얘기가 있었는가. 『지난달 말쯤 일이 거의 다된 상태에서 한국 정보관계자와 상의했다. 그때 한 관계자가 자기일처럼 잘 도와주겠다고 해 다소 안심이 됐다』 ―딸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갈 예정인가. 『왜 가고 싶지 않겠는가. 빨리 가서 가족을 보고 싶은 마음은 한량 없다. 그러나 의사들이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리고 있어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과 상의해 천천히 갈 계획이다』 ―탈북가족들의 생활대책은….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생활이 어려우니까 우선 끌어내는 데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이제 서울에 왔는데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는가. 물질적으로 큰 능력은 없지만 가족들과 상의해 가능한 한 도와주도록 하겠다』 ―함께 귀순한 국경 경비대원 최영호씨는 실제 조카인가. 『나이가 어려 잘 모르겠다. 얼굴도 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 딸 가족이 탈출하는데 미리 연락을 받고 많이 도와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뉴욕〓李圭敏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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