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중 일본 관동군으로 강제 징병된 뒤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던 한국인 생존자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당시의 미지불 군인급료와 억류생활중의 노동임금 지급등을 요구하는 전후보상 투쟁에 나서 주목되고 있다.
對日 제소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지난 12일 도쿄에 온 한국내 생존자 단체 `시베리아 朔風會'의 李炳柱 부회장(71.서울 양천구)등 2명은 `內鮮一體'등의 미명하에 관동군으로 징병돼 3년반 내지는 5년동안 舊소련의 전쟁포로로 중노동에 혹사당했으나 이같은 피해에 대한 아무런 회복조치 없이 자신들의 문제가 지금까지 방치돼 왔다고 호소했다.
李씨등에 따르면 당시 관동군에 편입된 조선인은 3천5백여명으로 일본의 무조건항복과 함께 즉시 귀환 조치됐어야 함에도 불구,창씨개명된 일본인 이름으로 60여만명의 관동군과 함께 그대로 소련군에 포로로 넘겨졌으며 그중 1천2백여명이 병사,동사등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들 조선인은 특히 시베리아 포로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과 일본군인들의 학대등 2중고에 시달리며 혹사당했으나 포로생활중의 군인급료는 물론 강제노역의 대가인 노동임금조차 받지 못했다.
朔風會측은 일본 정부가 지난 88년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관동군 포로 생존자 18만명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등의 피해 회복 조치를 취했으나 조선인 피해자들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서 일본이 자국민들에게 취한 것과 같은 보상조치는 최소한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관련자료에 따르면 당시 관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山田乙三)는 와시레브스키 소련점령군 사령관에게 "관동군을 노역에 종사케 해줄 것"을 자청했던 것으로 드러나 관동군 전체가 일본의 전쟁 배상 제물로 스탈린에 제공됐음을 부분적으로 시사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야마다는 관동군중에 조선인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귀환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삭풍회는 對日 보상요구와 관련, 러시아 공문서관으로부터 당시의 강제노역에 따른 개인별 미지불 임금 액수가 기록된 노동증명서를 확보해 놓고 있으며 변호인선임등이 이루어지는 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