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는 남편全씨 작품…이순자씨「회고록」 단독입수

  • 입력 1996년 12월 18일 07시 55분


지난 87년6월29일 당시 盧泰愚(노태우)민정당대통령후보가 「나의 구상」이라며 발표했던 6.29선언 내용은 전적으로 全斗煥(전두환)전대통령의 구상이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전씨는 당시 「6.10항쟁」으로 국민들의 직선제개헌요구를 도저히 묵살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직선제수용과 金大中(김대중)씨 사면 등을 골자로 하는 「6.29선언」을 구상, 이를 노씨의 「작품」인양 꾸며 발표하도록 했다. 당초 노씨는 87년6월17일 오전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 전씨로부터 직선제수용 등의 6.29선언내용을 발표하라는 말을 듣고는 『직선제를 수락한다면 대통령후보를 사퇴하겠다』고 극력 반대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본사가 단독입수한 전씨의 부인 李順子(이순자)씨의 회고록 초안에서 밝혀졌다. 16일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전씨가 6.29선언으로 국민의 뜻에 순종하고 평화적 정권교체의 단서를 연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낮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씨는 이 회고록에서 자신이 먼저 6.29선언의 핵심인 직선제수용을 남편인 전씨에게 건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회고록에 따르면 이씨는 87년6월13일 밤 전씨에게 『직선제엔 결함이 많지만 사람들은 그걸 원해요』라며 직선제 수용을 간절하게 호소하자 전씨는 『어제 朴英秀(박영수)비서실장도 당신과 똑같은 말을 합디다』라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전씨는 『직선제 후유증 때문에 신념을 갖고 반대해왔지만 국민이 원한다는 것을 안 이상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오』라며 처음으로 직선제 수용의사를 피력하면서 당시 자신의 심경을 「필생즉사(必生卽死)요, 필사즉생(必死卽生)」이라고 말했다는 것. 이씨가 이어 『(당시 정치피규제자로 가택 연금상태였던) 김대중씨도 풀어주실 건가요』라고 묻자 전씨는 『물론 그럴 생각이오』라며 거침없이 대답했다는 것. 이씨는 87년 6월들어 대학가의 시위사태가 격화되자 밤잠을 못이루며 고민하다 「무조건 살아서 평화롭게 청와대를 나와 옛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편 전씨에게 호소하게 됐다고 털어놓고 있다. 그후 전씨는 87년 6월17일 오전 10시경 청와대 집무실로 노씨를 불러 『국민의 뜻이 직선제라면 이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며 직선제 수용의사를 피력했으나 노씨는 『직선제를 수락한다면 대통령후보를 사퇴하겠다』며 일언지하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전씨는 그 자리에서 현행 헌법(간선제)으로 선거에 승리해도 노씨 집권 후 89년의 개헌논의는 불가피하게 된다는 등의 다섯가지 이유를 들며 장시간에 걸쳐 집요하게 노씨를 설득했으나 노씨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계속 머뭇거렸다는 것. 그로부터 이틀 뒤인 6월19일 노씨는 전씨와 함께 만찬을 갖는 자리에서 마침내 직선제 수용 등 전씨의 민주화구상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는 것. 이에 따라 전씨는 6월22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당이 마련한 시국수습방안을 노씨로부터 보고받는 것처럼 꾸며 『노대표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약속했으며, 이후 개헌논의가 재개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전씨는 6월22일 이후 6.29선언이 노씨 개인의 작품이라는 점을 내세우기 위해 노씨의 청와대출입을 금지하는 「금족령」을 내리고 자신과 노씨의 연락책임을 아들 재국씨에게 맡겼다. 전씨는 6월27일 오전 자신의 집무실로 李鍾律(이종률)공보수석 金聲翊(김성익)비서관 등을 불러 노씨의 6.29선언이 나오면 이를 전폭 수용한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라고 지시한 뒤 노씨를 만나 마지막으로 『모든 일을 주저없이 계획대로 밀고 나가라』고 지시를 했다는 것. 그러나 김비서관은 28일 오후 3시40분경 재국씨를 통해 전씨를 만나 『모든 국민이 분명 환호하고 감격할 이 선언만큼은 어떤 이유로든 정직하게 각하의 이름으로 선언돼야 한다』며 전씨의 시나리오에 반대했으나 전씨는 이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밤늦게 전씨는 서울 연희동 노씨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노대표, 내일 예정된 시간에 차질없이 시행하시오』라며 단호한 목소리로 지시했고 노씨는 바로 다음날인 6월29일 민정당중앙집행위에서 전씨가 마련한 각본대로 떨리는 목소리로 「6.29선언」을 자신의 구상인양 꾸며 발표하게 된다. 〈崔英勳·金正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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