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회고록 발췌3]『청와대 살아서 나간다』안도

  • 입력 1996년 12월 18일 07시 55분


1987년6월2일.

그날밤, 그분은 청와대경내 상춘재로 중요한 손님을 초청했다.

전통한옥인 이 상춘재에 그분은 역사적인 한 의식, 한 절차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후계자 노태우를 대통령후보로 추천하는 의식이었다.

이 추천의식은 한시간 반동안 진행됐다. 이 의식을 통해 당시 민정당대표였던 노태우는 대통령후보로 정식 추대되었다.

손님들을 보내고 본관으로 돌아온 그분의 모습은 상기돼 있었다.

『난 결국 해냈소. 내년이면 난 청와대를 떠날 수 있게 됐단 말이오』

이 일성은 중요하다.

공식적으로 후임자를 결정한 후 집으로 돌아와 그분이 아내인 내게 쏟아놓은 이 일성은 진실로 중요하다. 그날 우리 두 부부가 마주서서 나눌 수 있었던 그 첫마디는 정말로 소중하다.

아무나 청와대를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부수립이후 그날까지 한국의 현대정치사는 청와대를 정상적으로 떠나지 못한 지도자들로 몸살을 앓아왔다.

공화국 탄생후 42년짜리 몸살이었다.

청와대에 들어온 사람이면 누구나 애국심에 잠못이루고 유종의 미를 이루어내겠다고 결심했겠지만 그러나 제대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청와대를 떠난 사람은 사실상 단 한사람도 없었다.

권력의 심장인 청와대를 평화속에서 이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청와대경내로부터 세상의 거리는 도보로 겨우 4분거리였다. 문을 나서면 바로 바깥세상이었다.

청와대로부터 바로 4분거리의 세상으로 걸어나가는데 40년세월이 소요되고 있었다.

그분이 날 마주보며 터뜨린 일성은 바로 그 40년간의 운명적 숙제를 뛰어넘고 있는 행복한 자의 함성이었다.

『태우는 잘 해낼거야. 내무 정무 체육부장관 등 행정부의 주요직책을 두루 맡아보았으니 정부조직 수업은 잘 된 셈이고 당에서 정치인의 생리도 직접 체험하고 목격했으니 나처럼 어려움을 겪지않고도 잘해낼것이 틀림없어. 그뿐인가. 군에서도 요직을 두루 거쳤으니 군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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