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21세기/한반도97선택]최상용-배순훈 신년 대담

  • 입력 1996년 12월 31일 18시 15분


최상룡〓세계는 지금 인류사상 가장 큰 질적 양적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개별국가의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전환할 때는 나름의 사상이나 종교나 운동이 있었습니다. 로마가 멸망할 때 기독교라는 보편종교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고 중세 기독교사회가 몰락할 때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이라는 사상과 운동이 근대를 예고했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이데올로기와 군사력으로 대결했던 냉전체제가 붕괴한 지금은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사상이나 종교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 환경운동 등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큰 공백을 메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 못가진자 배려해야 체제안정 ▼ 배순훈〓냉전체제가 붕괴한 가장 큰 원인은 경제문제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냉전체제에서 이득을 보던 일본이 냉전종결이후 경제적으로 쇠퇴하는 것은 뜻밖입니다. 이는 우루과이라운드(UR)가 끝나고 미국경제가 활력을 갖추며 다시 강력해졌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진행된 정보화로 이같은 경제의 변화는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과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선진국 문턱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인식이 부족합니다. 최〓이념의 시대가 가고 경제의 시대, 자본주의 경제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또다른 안티테제에 의해 커다란 도전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배〓시장경쟁원리에 의하면 능력없는 자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타고날 때부터 능력없는 자, 그래서 못가진 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능력있는 쪽에서 없는 쪽을 어떤 방법과 절차로 도와줄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자유시장체제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최〓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체제를 갖고 있는 중국의 존재는 동북아의 앞날을 전망하는데 매우 중요한 변수입니다만…. 배〓중국의 지배층은 중국을 「자유시장경제적 사회주의」라고 규정합니다. 중국에는 자본가 그룹이 형성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가자본을 어떻게 배분해 나가느냐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鄧小平(등소평)이후 부를 배분할 강력한 권력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부(富)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나타날 소지도 높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아직 불안정한 체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 對北투자 늘려야 통일 앞당겨 ▼ 최〓세계의 그런 변화 속에서 한국 중국 일본 동북아시아 3개국간 협력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지역협력기구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유럽에는 유럽연합(EU), 북미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이 있지 않습니까. 동북아 각국의 역사와 정치체제가 달라서 정치적 군사적 협력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경제적 수준의 동북아 협력기구가 모색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두만강개발계획, 일본에서는 환동해(環東海·환일본해)개발계획을 내놓고 있습니다. 경제적 차원에서 동북아 협력체를 어떻게 보십니까. 배〓아태경제협력체(APEC)정도가 있지요. 물론 미국이 주도하니까 동북아만의 기구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국제시장에서 여전히 후진적인 면이 있고 일본은 폐쇄적인 면이 있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살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방을 해왔습니다. 경제협력기구가 필요하다면 우리가 적극적 역할을 해내야 할 것입니다. 최〓동북아의 앞날을 전망할 때 또하나의 중요한 변수가 북한입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본다면 북한은 하나의 요인에 불과하지만 외교안보면에서 본다면 모든 것의 요인입니다. 북한이 대남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다고 보지만 「신중하다」고 할 정도로 면밀하게 계산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북한은 6.25 이후 테러 납치 잠수함침투 등 그때그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써왔습니다. 북한은 앞으로도 생존의 방법으로 「벼랑끝 위기노선」을 선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봐도 북한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배〓북한도 모든 사람이 일하는 이상 먹고 살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생산에 재투자하지 않고 비생산적 군사목적에 투자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북한이 한국이나 미국으로부터 경제원조를 얻기 위해 군사적 모험과 군사분야 투자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채산이 안맞는 비효율이라는 것을 金正日(김정일)도 지금쯤은 깨닫고 있을 겁니다. 북한도 이제는 경제를 살리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특히 저는 북한의 경제를 살리는데 정보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보화는 생산성을 금방 올려줄 수 있기 때문이죠. 최〓경제계에서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북한을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배〓많은 경제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경제협력사업중 채산성이 있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북한의 노동력도 큰 매력은 없습니다. 통일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대북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 시장기능에 맡기면 경제 살아나 ▼ 최〓정치인들은 근시안적으로 북한을 보는 반면 경제인들은 중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정치인들이 경제인들의 전략적 사고방식을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배〓기업은 자기판단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지만 정치인들은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용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취임직후 개혁과 함께 고통분담을 강조했지만 고통분담이 제대로 되지않은 것도 그런 어려움 때문이 아닐까요. 최〓우리나라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이행단계를 넘어 이제는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단계에 와있습니다. 수준높은 민주주의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경제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통일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경제력이 튼튼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경제는 구조적 모순이 하나둘씩 터져 나오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는 위기입니까. 배〓우리는 우리의 경제력을 과소평가하는 편입니다. 반대로 외국 전문가들은 한국경제가 매우 견실하다고 말합니다. 주요 경제통계를 봐도 한국경제는 견실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성장률이 좀 낮아졌다고 해서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위주의 정권에서와 같은 고속성장이 아니라 선진국 문턱의 나라에 걸맞은 경제질서로 질적 도약을 하는 일입니다. 냉혹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한 시장경쟁의 논리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세계시장에는 정부도, 육성정책도 없습니다. 오직 시장경쟁의 논리만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우리 기업들이 시장경쟁에 익숙해지려면 경제상황이 조금 좋지않다고 해서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정부는 규제를 적극적으로 완화하고 모든 것을 시장기능에 맡겨야 합니다. 무역적자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 또한 정부가 개입할 문제는 아닙니다. 정부는 시장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건만 조성하면 됩니다. 최〓국내에서 철저한 적자생존의 논리가 적용되다 보면 과거와는 다른 구조적 불평등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시장경쟁시스템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배〓경쟁에는 언제나 승자와 패자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경쟁에서 지는 선수에 대한 사회적 벌칙이 너무 가혹합니다. 심지어 부도난 중소기업 사장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있습니다. 우리 경제체제에서는 기업을 하다 망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경제정책의 책임이 적잖게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은 「모든 중소기업이 망하지 않게 하겠다」는 실현불가능하고도 비효율적인 목표에 매달려 있지 시장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을 보호하는데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제 정부는 시장경쟁과정에 개입하려 하지말고 선의의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지나친 벌칙을 받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 공정한 기회 제공하는 사회를 ▼ 최〓올해 우리는 한국을 21세기로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실체를 꿰뚫어 보면서 통일을 주도할 든든한 리더십을 필요로 합니다. 통합능력과 문화의 의미를 아는 품격있는 지도자를 갈망합니다. 특히 경제인들은 한국경제를 명실공히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경제대통령을 원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배〓최고의 경제대통령은 정치를 잘하는 대통령입니다. 경제는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면 자연히 발전합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새 지도자는 「전체 국민」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정치 경제 사회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다수」가 아닌 「전체」를 의식하다 보면 우유부단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새 지도자는 대다수 국민의 이해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반대의견이 있더라도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추진해야할 것입니다. 최〓리더십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한국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한국인의 근면성과 교육열은 이제까지 성장을 이끌어온 견인차였지만 지금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경쟁력있는 고급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놓으려면 근면성은 물론 기술개발력 패션감각 경영마인드 등을 함께 갖춘 21세기형 한국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21세기형 한국인은 고사하고 맹목적인 금전숭배를 하다못해 해외에까지 나가 추태를 부리는 「추한 한국인」이 많아 걱정입니다. 배〓일본인들이 과거에 그런 행동으로 「경제동물」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이제는 우리가 그것을 답습하려하고 있습니다. 경제동물은 세계경제질서에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 윤리적이지 않으면 세계시민이 될 수 없습니다. 〈정리〓尹正國·千光巖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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