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종칼럼]「읍참마속」의 결단없이는…

  • 입력 1997년 1월 31일 20시 09분


건국이래 최대의 금융비리라는 「한보의혹」에 내로라하는 여야정치인과 고위공직자의 관련설이 불거지면서 정 관계 전반의 부패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야당총재는 대통령과 최측근도 조사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당측도 야당총재와 그 측근의 의혹을 폭로하는 등 여야가 체면도 염치도 없이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런 정치판을 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착잡하다. 특히 문민정부 권력의 핵이요, 정치권 「실세」라는 정 관계인사들이 매스컴을 통해 한보스캔들과 관련, 『나는 무관하다』고 발뺌하는 「네탓」 공방을 보고있노라면 이 정권의 도덕성과 통치능력의 바닥을 보는 느낌이다. 한보의혹의 진상은 「얼굴없는 배후」와 부정부패의 검은 커넥션이다. 문민정부가 말로는 「개혁」을 외치고 대통령은 깨끗하다 할지라도 그 하부구조는 옛 그대로다. 이른바 「개혁의 주체」들이 한묶음 의혹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이 정권은 불신을 받고 있다. 金泳三(김영삼) 정권 4년에 도대체 무엇이 고쳐지고 어디가 달라졌는지 찾아보기 힘들다. ▼ 한보사태와 「무책임 정치」 ▼ 한보사태의 또 하나의 불행한 측면은 일을 벌여놓고 수습은 나몰라라 하는 무책임 정치다. 부총리를 비롯한 전 현직 경제각료들과 경제비서들 그리고 민주계 「의혹의원」들이 자신은 아니라면서 말단 은행장들의 탓으로 돌리는 몰염치는 이 사태에 아무도 책임지려하지 않는 사실상의 「무정부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이 의혹규명에 앞서 자신의 청렴만 강조하는 현실에선 그 휘하 사람들이 우선 살아남으려는 「면피」 풍조가 만연하게 마련이다. 이런 무책임하고 비전없는 정부에 추락해가는 국가경제의 회생책을 기대하기란 절망적이라는 느낌이다. 재계관계자들은 이미 악화된 우리경제를 더욱 벼랑으로 몰고 간 이번 한보파동이 그 파장이나 수습에 대한 면밀한 「경제적 검토」 없이 「정치적 논리」에 따라 터져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금 시중엔 「만득이 시리즈」 같은 각종 루머들이 나돌고 있다. 청와대만 모른다거나 또는 알면서도 모르는척한다 해서 언제까지 덮어둘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국민은 깨어 있고 「제2의 李文玉(이문옥)」이 곳곳에서 튀어나올 수도 있다. 검찰수사가 야당의 주장대로 「핵심피해가기」 「물타기」로 끝나서는 의혹만 증폭시킬 것이다. 아무리 「PK검찰」이라 할지라도 이번 기회에 엄정한 수사의 독자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일선 검사가 신문투고로 정치권에 예속됐다며 전 현직 수뇌부를 성토하는 제2의 내부반발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정치권에도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 국회가 국정조사에 임한다 해도 검찰수사가 못밝히는 실체적 진실을 파헤칠수 있을까. 오히려 여야가 서로 면죄부를 주고받는 막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 취임당시의 초심으로 ▼ 결국 사태수습의 열쇠는 김대통령에게 돌려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차제에 주변부터 정리하는 결단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은 돈을 받지않는다 해도 민주계 실세들이 10여명의 비서진을 거느리고 한도를 넘는 정치자금을 쓰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대통령주변의 실세와 참모들이 일류호텔 호화식당에서 한병에 70만원짜리 양주를 즐기고 있다면 대통령이 혼자 칼국수먹고 근신하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기에 앞서 등잔밑이 썩어가는 이 정권의 실패한 개혁을 바로잡는 뼈를 깎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전에는 떠나는 민심을 잡기 어렵다. 대통령은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취임초의 초심으로 되돌아가서 친인척비리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각오로, 이젠 짐만될 뿐인 민주계 실세비리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지적을 받더라도 새정치질서를 바로세워야 한다. 그같은 결연한 의지는 야권의 「2金(김)」에게도 정치판 새로짜기를 촉구하는 강력한 카드가 될 것이다. 김대통령이 「40년 동지」를 버리면 「4천만 국민」의 지지와 호응을 되돌이킬 수 있다. 정 구 종<출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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