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기자] 이한영씨 피격사건을 조사중인 합동수사본부는 이번 사건을 남파간첩이나 고정간첩 어느 한쪽의 단독범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범행과정을 분석해볼 때 여성월간지 「우먼센스」기자를 사칭하거나 차량을 이용, 단시간에 범행현장을 빠져나가는 등 국내지리와 사정에 밝은 공작원이 최소한 1명이상 있지 않고서는 범행이 불가능한 대목들이 많다는 것.
또 황장엽비서가 북경대사관으로 망명한 12일 이전부터 이씨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고정간첩이 있다는 추정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결국 이번 이씨를 저격한 팀은 북에서 온 남파간첩(암살조)과 국내 고정간첩으로 구성됐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문제는 남파간첩이 어떤 루트를 통해서 들어왔느냐는 점.
수사본부는 최소한 1명이상의 암살조가 육상이나 해상통로보다는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를 통해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있다. 우선 강릉무장간첩사건 발생이후 육상이나 해상통로로 침투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 1차적 판단근거.
또 암살지령을 황비서망명 이후 북한 최고위층에서 급히 지시한 것으로 볼때 공작요원은 남한침투가 100% 보장된 루트를 통해서 한국에 들어와야 하고 그렇다고 볼 때 일본 등 해외에서 합법적인 신분으로 입국했을 가능성이 높다는게 2차 판단근거.
지난 87년 KAL858기 폭파사건에서도 독약을 먹고 자살한 金勝一(김승일·일본명 하치야 신이치)이 일본인으로 위장, 일본여권을 갖고 서울에 두차례나 입국했던 예가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해외주재공작원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여행객으로 가장해 서울에 입국해 범행했을 가능성이 있다.
수사본부는 공작원이 조선족으로 가장해 미리 들어와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다.
침투 공작원은 해외에서 입국할때 무기를 가지고 들어올 필요가 없다. 국내의 「무인 포스트」를 통해 총기를 손에 넣거나 고정간첩으로부터 넘겨받으면 된다는 것. 무인 포스트란 침투간첩이 고정간첩을 만날 필요없이 미리 약속된 비밀장소에서 돈이나 무기를 확보하는 장소다. 지난 95년 부여간첩사건에서도 해상에서 침투한 김동식은 무인포스트에서 브라우닝 권총과 돈을 확보했다.
수사본부의 이같은 추정이 맞다면 북에서 침투한 요원들은 이미 한국을 떠났을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범인검거는 어려울 것이라는게 수사본부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