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기자] 북한의 金正日(김정일)이 자신의 권력기반강화를 위한 전위행동대로 운영해온 「3대혁명소조」가 지난95년말을 기해 사실상 해체된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물론 북한당국이 3대혁명소조의 해체를 공식발표한 적은 없다. 그러나 북한관영매체들이 96년이후 이 조직의 활동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으로 미뤄 북한이 95년말경 비공개 중앙당회의를 통해 이 조직의 「조용한 해체」를 결정했을 것으로 관계당국은 보고 있다.
노동당 3대혁명소조 사업부 부장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온 김정일의 매제 張成澤(장성택)의 직함이 지난해 「당중앙위 제1부부장」으로 바뀐 것도 이 조직의 해체를 뒷받침하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대혁명소조의 사실상 해체는 김정일이 자신의 지도력과 권위의 손상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실정(失政)을 시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당초 김일성은 지난 73년2월 김일성종합대 김책공업대 등 중앙급대학 졸업생들의 회의를 소집, 3대혁명소조운동을 선포했다. 사회주의헌법에 규정된 「3대혁명」(사상 기술 문화혁명)추진을 위해 대학졸업생들을 공장 기업소 농촌에 파견, 낡은 사상을 완전히 뿌리뽑기 위한 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를 노동당조직지도부 안에 두고 초대부장을 맡아 활동을 직접 관장했다.
그러나 이런 슬로건과는 달리 3대혁명소조는 김정일 유일지도체제를 세우기위한 돌격대역할을 하는데 그쳤다. 시간이 갈수록 각급 간부들의 사상동향과 활동을 감시 통제하고 이를 즉시 김정일에게 직보하는 이른바 「장악보고체계」를 철저히 세우는 것이 조직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돼버렸다.
이에 따라 3대혁명소조는 절대권력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존재로 군림하며 인민들을 괴롭히고 기존의 당조직과 끊임없는 갈등과 마찰을 불러일으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김정일은 이런 비난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