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지명관/봉건체제와 家臣정치

  • 입력 1997년 3월 9일 19시 47분


북에서 망명의 길을 택한 황장엽씨가 북한 공산주의 사회는 사회주의체제가 아니라 봉건체제라고 했다고 전해졌다. 그때 그는 북한사회의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서 그 자신이 구축했다고 하는 이른바 「주체사상」이라는 것이 사실은 사회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봉건체제를 유지 강화하려는 것이었다는 데 대한 반성도 포함시켰는지는 분명치 않다. ▼ 자기 권력에의 도취 ▼ 「어버이 수령」을 한없이 존경하고 흠모하며 그에게 열렬한 충성을 바치는 나라, 그리고 그러한 수령이 「근로대중」에게 정치적 생명을 부여하고 그것을 육성해 주기 때문에 수령과 인민 사이에는 한가지 피와 사상이 맥박친다고 하는 이른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부르짖는 나라, 이러한 주체사상이야말로 혁명이라는 말과 함께 모든 미사여구를 동원해 만들어낸 봉건사상이 아닌가.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충효일심」(忠孝一心)이란 봉건사상의 핵심이고 그런 체제를 우리는 「가족국가」라고 말한다. 어버이 명령에 모든 백성이 일사분란하게 순종하고, 백성은 언제나 어버이 마음을 헤아려야 하며, 그의 슬픔은 곧 나의 슬픔이라는 것이다. 통치자로서는 그렇게 다스리기 쉬운 나라, 그렇게 자기 권력에 도취될 수 있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폐쇄된 사회, 진보나 발전을 모르는 사회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이제 우리는 북한이 사회주의를 내걸면서도 왜 그러한 봉건체제로 되돌아갔는가 물어야 한다. 거기에 대해 젊은 마르크스가 중요한 해답의 하나를 제시해 주었다는 것은 너무나 아이로니컬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1844년 불과 26세의 마르크스는 근대국가의 「문명적 결함」이 「구체제의 야만적인 결함」과 결부되는 상황에 대해 경고했다. 새로운 문명의 나쁜 점과 낡은 문명의 나쁜 것이 결합한다는 말이다. 해방 반세기를 넘어 북한이 소리높이 외친 혁명이 도달한 점도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인민대중」위에 군림하는 「수령」이라는 봉건체제로 전락한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남한의 경우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가신정치」니 「김심」(金心)이니 「읍참마속」(泣斬馬謖)이니 하는 낱말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봉건체제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대통령이 되면 그 아들이 국정에 깊이 개입한다든지, 새벽에 1백55명의 여당의원들끼리 그야말로 일사불란하게 단6분 동안에 11개 법안을 통과시킨다든지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봉건체제의 냄새가 물씬 나는 것 같다. 그 1백55명이란 누군가에 대한 「충성심」, 아니 「효성」만 알지 주체적인 책임의식이 없는 인격을 상실한 기회주의자들이라고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고개숙인 대통령」 다행 ▼ 왜 이 나라 정치는 이 꼴인가하고 여기서도 묻게된다.젊은 마르크스의 말을 상기하면서 민주주의라는 탈 밑에서 낡은 체제의 「야만적인 결함」이 춤추고있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해방 반세기라고 해도 권위주의 통치가 오래 계속되면서 그 「야만적인 결함」을 씻어낼 수 없었다고 할까. 그렇지만 그 「야만적인 결함」이 정치세력 일부만을 지배할뿐 전국민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25일에 대통령이 그 정도나마 사과하고 국민앞에 고개숙이는 모습을 보고 그래도 우리는 분명히 봉건체제 아닌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나는 퍽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지명관(한림대교수·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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