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서울行/북경 떠나던날]『黃이송』첩보작전 방불

  • 입력 1997년 3월 17일 07시 34분


黃長燁(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를 16일밤 영사부 건물에서 군기지로 옮기는 데는 첩보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극비리의 치밀한 계획이 동원됐다. 중국 당국은 한달여 동안 영사부 입구에서 대기해온 각국 보도진의 눈길을 완벽하게 따돌리고 황비서 일행을 제삼국행 비행기에 태우기 위한 군기지로 안전하게 이송했다. ○…황비서가 영사부를 출발한 시각은 16일 밤 현지시간 9시에서 10시 사이. 鄭鍾旭(정종욱)주중대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간단히 여장을 꾸린 뒤 별도의 차편으로 조용히 출발. 황비서 일행이 이용한 차량은 중국이 「관할권」을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공안기관의 차로 추정된다. 중국 당국은 황비서가 74세의 고령인 점을 감안, 17일 아침으로 예정된 필리핀행 군용기에 탑승하기 전 안전한 장소에서 최대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예상보다 다소 이른 시각에 영사부를 떠나도록 조정했다는 후문. ○…황비서의 영사부 출발은 사전에 완벽한 준비작업을 거쳐 단행돼 한달이상 촉각을 곤두세워 온 각국 보도진의 추적을 따돌리는데 성공. 중국공안은 경호차량이 뒤따를 경우 황비서의 출발사실이 감지될 것을 우려, 선팅을 한 차량에 태워 조용히 빠져나가는 방법을 구사한데다 영사부에서 빠져나오는 골목이 다섯개나 되고 시간당 40여대 이상의 각종 외교관 또는 공안당국 차량이 드나들 때를 이용. ○…이날 황비서의 영사부 출발에 앞서 한국대사관 소속 차량들이 평소와 달리 연이어 영사부로 들어가는 게 목격되면서부터 무언가 이상한 조짐이 감지되기 시작. 16일 오후 6시11분과 7시52분에 한국대사관 넘버 표시를 한 차량이 영사부로 들어가는 것이 목격됐다. 이어 정종욱대사가 탄 대사관 1호차와 번호판을 뗀 별도의 벤츠승용차가 함께 오후 7시45분에 영사부에 들어가 약 28분만인 8시13분에 나와 대사관으로 직행. 정대사는 황비서의 망명사건 이후 중국 외교부를 방문할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대사관에서 숙식을 해왔으며 이날 밤 영사부 방문도 대단히 이례적. ○…일요일인 16일 오전까지만 해도 황비서가 출발하기에는 2,3일이 더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주중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물론 서울의 외무부로부터도 이같은 소식이 전해져 취재진들은 한숨 돌리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저녁무렵에 갑자기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 내외신 기자들이 하나 둘씩 영사부 부근에 집결해 황비서 출발을 확인하려 했으나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퓐刮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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